(16) 방앗간에서 듣는 정보
전원생활을 하다보면 방앗간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해에는 녹두도 한 이랑에 심어 반 말 정도 거뒀으니 타야 했다.
들깨는 펫트병으로 두병, 참깨는 펫트병으로 하나에 소주병으로 하나 기름이 나왔다.
이 정도면 우리 식솔 먹는데야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다.
고춧가루가 나오기까지 건고추를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도 방앗간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실감이 났다.
만약 건고추를 사서 고춧가루를 낸다면 꼬투리를 떼고 방앗간에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방앗간에 갔더니 부인네들이 가위로 고추 꼬투리를 자르고 있었다.
마땅한 작업 공간이 없었던지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김장용 고춧가루를 내려고 건고추를 다듬는
모양인데 작업 속도도 높히면서 분량을 늘리려고 꼬투리 전체를 통째 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꼬투리 주변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 성분이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고추가루에서 기준치 이상의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분량을 늘리려는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빻는 과정에서 씨가 빠져 나오고 나머지가 고춧가루이다.
그러니 건고추를 사서 가루를 낸다면 거의 절반 가까이가 빠져 나가는 셈이다.
마치 도둑맞은 기분으로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즉 밭에서 건고추로 거둔 중량의 60~70% 정도 만이 고춧가루가 되는 것이다.
건고추 한 근의 무게는 600g이지만 고춧가루를 내면 420~430g 정도 나온다.
그래서 고춧가루 기준으로 한 근은 400g으로 치는 지역도 있단다.
그러다 보니 수요자와 생산자 사이에 계근에 따른 오해와 다툼도 발생하게 마련이다.
방앗간은 또 고추나 들깨의 가격 동향을 알 수 있는 정보마당이다.
풍작인지 흉작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거래를 중개하거나 방앗간에서 직접 구매를 한다.
서울의 대량 실수요자들도 방앗간을 통해 고추를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방앗간 주인은 우리 한테도 고추나 들깨를 팔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렇듯 방앗간이야 고추나 깨를 중개하거나 가루를 빵구고 기름을 짜는 곳이거니 하였다.
그런데 어느 영감님이 요상한 씨앗을 가지고 와서 기름을 짜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알고보니 달맞이꽃 종자란다.
아토피에 특효가 있고 노화방지에 좋아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깨는 아닌데 씨앗이 아주 미세하여 과연 기름이 얼마나 나오랴 싶었다.
거기다 7.5kg나 된다니 수확하는 수고가 눈에 선하다.
선별한다고 바람에 날리면 모두 날아갈 듯싶어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비법이 있단다.
그런데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피하는 눈치다.
방앗간집 주인과 조용히 주고 받는 말을 들으니 자연산은 아닌 모양인데
내가 물으니 자연산이라고 우기신다.
재배하는 사람들이 늘어 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 것을 보니 나도 경계하는 눈치다.
하도 속이는 사람들이 많아 아예 종자를 사다 자기가 직접 기름을 짜는 사람도 있단다.
효능도 좋다지만 수고하는 인건비 때문에라도 비싼 값이 될 것이 뻔하다.
7.5kg를 기름으로 짜니 소주병으로 네개 정도 나왔다.
더 바싹 말린 것이라면 반병은 더 나왔으리라고 주인이 일러 주었다.
특히 약으로 쓰는 기름은 덜 볶아서 기름을 짜는 것이란다.
호기심에 우리 몫의 깻묵 이외에도 그 영감님이 기름 낸 달맞이꽃 종자유 찌꺼기도 얻어왔다.
다양한 영양소를 액비로 쓰려는 속셈이다.
경사지는 잡초로 볼썽 사납게 방치되기 십상이다.
잡초 걱정없이 보기 좋은 식물을 심고 싶었다.
거기다 꽃도 보고 약초로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금상첨화 아닌가!
꽃잔디는 보기는 좋은데 약초 기능은 없다.
그리고 너도 나도 꽃잔디를 심는 곳도 많아 식상하다.
그런데 마침 달맞이꽃이 등장한 것이다.
이미 경사지에 자리 잡은 머우와 원추리, 차조기에 달맞이꽃이 추가된 것도 방앗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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