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은퇴자/전원농가의 뱁새농법

30. 통행로의 중요성

예농 2012. 6. 14. 20:51

(14) 통행로의 중요성

 

 

 

전원생활을 처음 할 때는 잡초 때문에 밭과 길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잡초는 뽑고 돌아서면 다시 나온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특히 고랑의 풀이 자라 작물보다 더 크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장화를 신고 풀을 밟아 넘어 뜨려야 했다.

그 때만 해도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지으려면 당연히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으로 각오를 했었다.

심지어 풀과 작물이 한데 어울려 자라는 모습을 자랑꺼리로 삼는 귀촌 시인 쯤으로 자부하기도 했다.

마치 원시적인 농사가 진정한 농사인 것처럼 행세를 한 것이다.

비닐 피복을 하는 것 마져도 땅에 대한 모독이며 자연을 거스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제초제나 농약,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짓는 3 무 농법에 도전했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그리 무모할 수가 없다.

농사철이면 작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잡초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그러니 그런 밭에 자주 가겠다는 마음이 선뜻 들겠는가?

어쩌다 풀밭을 헤치고 밭에 나가면 으례 뱀 한 두마리는 눈에 띄었다.

안식구 뿐 아니라 나 역시 징그러운 뱀을 보면 기분이 상했다.

밭에 자주 나가지 않으면 작물은 해충에게 아예 통째로 넘기는 셈이 된다.

소출이 형편없으니 가을이면 의기소침해지기 십상이었다.

작물은 역시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자주 밭에 나가면 잡초나 해충을 그냥 둘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밭에 자주 나가려면 통행로가 잡초에 점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잡초가 햇볕만 가리면 힘을 못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엇으로 햋볕을 가리느냐에 따라 비용 문제가 따른다.

고랑의 풀은 부직포가 출시되어 아주 편리해졌다.

그러나 부직포를 농로에 깔 경우에는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나는 부직포를 대신해서 차광막과 퇴비푸대를 농로에 깔았다.

고랑과 달리 통행로는 한번 피복하면 그만이다.

벗겼다 깔았다를 반복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농협 퇴비 푸대는 매년 발생한다.

한꺼번에 작업을 못하면 몇 년에 걸쳐 급한 곳부터 차례로 손을 댔다.

밭에서 나온 돌은 배수로와 통행로 사이에 깔았다.

배수로에서 뻗어 나온 잡초가 통행로로 침범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윗 밭에 올라가는 길은 보온덮개를 깔았다.

길이가 약 50m 정도 되기 때문에 2만원 짜리 보온덮개 다섯장이 들어간다.

결국 10만원 비용으로 도로 포장을 한 셈이다.

트랙터나 자동차가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손수레를 이용하는데는 불편이 없다.

윗밭도 이미 트랙터로 이랑 작업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무경운으로 농사를 지을 수가 있다.

이 통행로는 제법 길고 넓기 때문에 차광막으로는 작업이 어렵다.

특히 경사가 진 길은 차광막이 미끄럽고 밀리기 쉽다.

보온덮개는 자체 무게가 있어 땅에 잘 흡착하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다.

통행로가 깨끗하니 뱀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윗밭에 올라갈 때 주저할 핑게가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