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은퇴자/전원농가의 뱁새농법

81. 탄저병은 피할 수 없는가?

예농 2012. 7. 5. 10:15

7) 탄저병은 피할 수 없는가?

 

귀촌 2년차 지리한 장마비와 폭염이 연일 지속되던 어느날 나는 고추밭에 갔다 크고 작은 반점이 생긴 고추를 발견하고 덜컥 겁이 났다. 드디어 우리 밭에도 그 무서운 탄저병이 나타난 듯 싶었던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머리에 듬성듬성 발병한 도장밥 같은 병이 고추에 생긴 것이다.

동네 농부들도 이구동성으로 탄저병이란다. 역시 탄저병은 무서웠다.

농사 지은 것을 모두 버리자니 아까워서 안식구는 가위를 들고 환부를 오려내며

고추 하나라도 건지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거둔 고추로 고춧가루를 내어 김장을 했더니 그 해 김장은 결국 물러 터진 김치를 먹게 되었다.

 

 

고추농사가 어려운 것은 탄저병 때문이다.

다른 병충해는 어느 정도 수확량을 포기하면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

그러나 탄저병은 아예 고추밭을 초토화시켜 거의 건질 것이 없다.

더구나 탄저병은 어지간한 농약으로는 잡기도 어렵다.

때를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농약통을 메고 고추밭에서 살아야 한다.

농업기술원에서도 결국 비가림 시설이 아니면 탄저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용이다.

고추 전문농가라면 모를까 아마츄어 전원농가에서 수백만원을 들여 비가림 시설을 할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간이 비가림 시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첫해는 이랑이 동서향이라 남풍에 쉽게 비닐이 훼손되고 날아갔다.

그래도 비를 맞는 횟수를 줄이거나 덜 맞았던 때문인지 그나마 비가림을 했던 곳은 화를 면하거나

시차를 두고 뒤늦게 탄저병이 발병했다.

다음 해는 이랑을 남북향으로 바꾸고 제일 앞은 비닐을 연장하여 치마를 둘렀다.

아무래도 앞 바람을 직접 받으면 비닐이 날아갈 확율이 높았다.

바람막이로 수수도 고추밭 이랑 맨 앞에 두 그루씩 심었다.

다행히 바람의 저항을 분산시킨 덕분에 뒷부분의 비닐이 훼손되지 않고 잘 버텨 주었다.

그러나 태풍급 호우가 쏟아지니 오히려 수숫대가 뒤로 꺾여서 비닐 위를 덮쳤다.

어지간한 바람에는 견뎠지만 태풍에는 달리 피할 방도가 없었다.

이 역시 시행착오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어쨋든 간이 비가림 장치를 하는 작업의 매뉴얼은 나름대로 완성된 셈이다.

얇은 비닐 양변에 끈을 넣고 바느질로 봉하면 사진에서 처럼 4방 지주에 끈으로 고정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비닐 위로 빗물이 고이면 하중을 받으므로 자칫 비닐이 쳐지거나 벗겨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양쪽 비닐 하단에 못으로 구멍을 여러 개 뚫어 주어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했다.

번잡하기는 하지만 아주 적은 비용으로 간이 비가림 시설을 한 것이다.

문제는 번잡한 비닐 작업을 매년 반복해야 하느냐이다.

더구나 태풍을 감안하면 도저히 다시 도전할 의욕이 사라졌다.

가능하면 비가림 시설 없이도 탄저병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므로 비가림 시설을 하지 않은 이랑에 대한 별도의 실험을 계속하기로 했다.

 

즉, 탄저병균인 곰팡이의 발생과 확산을 줄이기 위해 재배환경을 개선하고

약효가 있을 법한 친환경 약재를 주기적으로 살포하기로 한 것이다.

탄저병은 예방을 철저히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간의 알려진 지식과 내 경험을 모아 정리해본다.

 

첫째, 두둑을 30cm 이상 높혀서 빗물이 흙에서 튀어 묻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나는 두둑도 높혔지만 고랑에 부직포를 깔아 원천 봉쇄를 했다.

고랑에 부직포를 까는 것만으로도 10%정도는 탄저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둘째, 고추 이랑을 너무 바짝 붙여 심지 않도록 한다.

통풍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고추 이랑 사이에 마늘과 양파 같이 키가 작은 작물을 심었다.

좁은 간격은 결국 습도를 높히는 원인이다.

 

셋째, 위와 같은 이유로 가급적이면 배수로 옆이나 경사지 골 가까이에는 고추 재배를 피한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습한 공기가 많은 통로이기 때문이다.

 

넷째, 비가 오기 전날이나 온 직후 칼슘과 매실효소 같이 미량 요소가 많은 액비에 광합성 미생물을 혼합하여 엽면 시비하므로서 고추의 면역력을 높혀 준다.

 

다섯째, 만약 탄저가 오면 전염된 것은 즉시 뿌리 째 뽑아 멀리 격리시킨다.

특히 탄저균은 겨울 동안에도 월동을 하므로 고춧대는 수확 직후 뽑아 버려야한다.

이듬 해 지주를 다시 사용하려면 락스를 500배 정도 물에 희석하여 세척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럼에도 탄저병균에 대한 직접적인 공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곰팡이균에 대한 살상효과가 있다는 약재 중에 인체에 무해한 것을 골라 살포했다.

 

먼저 매실효소 농법이다.

매실의 살균력이 탄저균까지 효능을 보이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비록 탄저에는 효과가 기대치 만큼 크지 않아도 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미량요소를 엽면시비한

효과가 있어 고추의 면역력을 높히는데는 기여할 것이다.

탄저병을 비롯한 각종 병충해는 작물의 영양 결핍에 따라 확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적정한 추비는 병충해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겸하여 식초농법을 같이 사용했다.

감식초를 살포하여 효과를 봤다는 농가도 있고 오직 현미식초만이 효과가 있었다는 농가도 있다.

특히 현미식초를 사용한 농가는 붕산을 혼합하여 살포했다고 한다.

붕산은 미량요소에 해당하므로 면역력 증강을 위해 투입한 것일게다.

 

그 다음은 과산화수소 농법을 적용해 보았다.

과산화수소 농법은 대추나무의 잿빛 곰팡이 방제에 쓰인다.

꽃 필 무렵 발생하는 잿빛 곰팡이로 대추 농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 농업기술원이 개발한 방법이다.

농업기술원의 실험 결과는 방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고추에도 잿빛 곰팡이가 피해를 줄 수 있다. 수정 방해 현상은 대추와 같을 것이다.

다만 탄저균까지 살상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약국에서 파는 과산화수소 용량은 한 병이 250ml 이다.

물 한 말(20리터)짜리 농약통에 과산화수소 한 병이 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락스를 살포해보았다.

락스는 천일염에서 추출한 곰팡이 살균제이다.

일반적으로 실내나 욕실의 곰팡이 제거용으로 쓰인다.

안식구는 락스가 채소류의 세제로도 쓰인다는 점을 들어 고추 탄저병에 적용해보자고 했다.

아직 실험 결과에 대한 확신은 없다.

첫해는 한꺼번에 여러 농법을 혼용했기 때문이고 다음 해에는 가뭄으로 락스의 사용이 늦었다.

그러나 다른 농가에서 탄저가 발생했을 때 우리 밭은 비교적 늦게 탄저가 왔었고 가뭄이 지나 탄저가 찾아 왔을 때 부분적으로 탄저가 나타났을 뿐 확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락스 역시 적정량(400~500배 희석)을 살포했을 때 다행히 고추에 직접 약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른 방법보다 락스 농법이 그 중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락스를 살포할 때는 고추밭 양쪽을 빠짐없이 고루 뿌려야 한다.

뿌리는 방법은 물론 아래에서 부터 위로 분사해야 한다.

살포 기간은 가급적 습도가 올라가는 7월 초순 부터 탄저가 왕성하게 발생하는 9월 초까지

5~7일 간격으로 뿌리되 고온 다습한 기후가 지속되는 시기에는 3일에 한 번씩 뿌린다.

비 온 직후에는 칼슘제도 함께 뿌린다.

 

농법의 실험은 1년에 한 번 밖에 기회가 없다.

따라서 어느 개인이 모두를 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타인의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이론적으로 타당한 것들을 골라 시도하는 것이 그나마 확율을 높힌다.

 

이러한 약재에 의한 방제는 무엇보다도 시기 선택이 중요하다.

탄저병이 창궐하는 시기는 장마기의 습도가 언제 높아지느냐에 좌우된다.

습도가 높아지면 3일에 한 번씩 곰팡이에 효과가 있는 약재를 살포해야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약재에 의한 완전한 탄저병 방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지난 해 실험 결과를 토대로 얻은 결론은 탄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락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기간은 7월 중순에서 8월 말까지 약 7~8 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락스를 살포하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3~4일에 1회 엽면 살포하는 것으로 탄저의 추격을 뿌리치는 방법이다.

비 가림보다는 경비나 수고가 덜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못하는 것은 매년 기후와 생육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락스의 효능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결실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농진청에서는 탄저병에 강한 고추 품종을 육종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드디어 탄저병으로 부터 해방되는 때가 온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수고와 비용이 절감될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