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은퇴자/전원농가의 뱁새농법

70. 토봉이들이 떠난 텅빈 봉장

예농 2012. 7. 2. 08:37

(3) 토봉이들이 떠난 텅빈 봉장

 

 

 

 

2010년 4월 4일 새벽 4시경이 우리집으로 토종벌이 이사온 날이다.

토종벌 전문가인 지인의 도움으로 토종벌을 세통 분양받아 두 통을 더 늘려 본 경험이 전부다.

유인봉상을 만들어 분봉을 받는다고 야단법석을 떨어도 초보딱지를 알아보는지 벌들은 야속하게도

다른 곳에 살림방을 구해 떠나갔다.

그래도 두 통을 분봉하는데 성공하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늘어날 벌통의 숫자를 미리 헤아리면서 얼마나 또 꿈에 부풀었었던가!

 

토봉이는 꿀을 선물할 뿐 아니라 작물의 수분을 매개하는 농사 도우미이다.

특히 토종벌통들이 장승처럼 서있는 모습을 보면 전원농가의 조경에도 한 몫을 할것이었다.

그러나 초보가 분봉을 받는다고 새벽잠도 설치며 가까스로 2통을 늘렸지만 곧 분봉나온 통 하나가

애벌레를 물어 나르는 증상을 보이더니 오래지 않아 폐봉이 되었다.

그 무렵 전국을 강타한 신종 플루라는 부패병(낭충봉아부패병)이 원인이었다.

 

그래도 밀원이 좋으면 내성도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버텼지만 결국 차례로 전염이 되고 말았다.

이 병은 초보인 나 뿐 아니라 전문 토봉업계 전체를 핵폭탄처럼 초토화시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그런 때에 입문을 한 것이 불운이었다.

 

 

 13개까지 통을 달았던 강군도 병에 감염되자 꿀마져 대부분 남긴 채 집을 포기하고 떠났다.

 

 

 

 마지막 남은 벌통도 강군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나름의 정도 들었던 터라 원인 모를 질병과 싸우는 벌의 몸부림이 애처로웠다.

 

밀원수로 정평이 난 바이텍스가 제법 훌쩍 자랐다.

바이텍스와 인연을 맺은것은 물론 토종벌 때문이다.

밀원이 풍부해야 벌을 키우기 수월하다는 생각에 밀원수를 찾다가 만났다.

 

바이텍스를 종자로 번식하여 실생묘를 얻게되니 더욱 애착이 갔다.

다만 밀원수는 준비되었는데 막상 꿀벌은 사라졌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꺼져가는 생명들을 지켜보는 것도 고문이었다.

마지막 통이 약군으로 돌아서자 이번에는 남아있는 꿀을 약탈하려고 양봉이 대거 습격해왔다.

벌통을 열고 보면 밑바닥에는 벌집 부스러기와 토봉이의 주검들이 한데 쌓여 처참한 모습이었다.

빈통을 대신 놓고 그 앞에 토봉이의 주검을 모아 놓았다.

내 나름의 장례식이었다.

  

 

생물과의 인연을 맺고 끝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다.

처절하게 전쟁을 치루고 전사한 우리 토봉이들을 애도하며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간 토봉이와 보냈던 6개월 남짓한 날들이 즐겁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픈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아마 한동안은 다시 토봉이를 들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