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소한 계란의 맛을 잊지 못해
어린 시절 최고의 반찬은 계란 찜이었다.
생계란에 밥을 비벼 먹을 수 있으면 더 할 수 없이 호강한 것이다.
그 고소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숫갈을 보고 있노라면 얼른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방목하고 자가 사료로 먹인 닭은 아무래도 양계장의 닭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다른 가축은 몰라도 닭 만은 키우고 싶었다.
우리 손주들에게 우리가 먹었던 그 계란 맛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서투른 솜씨로 하우스형 계사를 짓고 서둘러 병아리 열 마리를 들여왔다.
누구는 산란계를 키우라고 했지만 시장에서 흔히 파는 잡종 토종닭을 샀다.
그러나 왕초보는 역시 허술했던 모양이다.
기대에 부풀어 다음날 계사에 들어서니 여기 저기 병아리의 주검이 눈에 들어 왔다.
그나마 두 마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쪽제비의 침입이 분명했다.
여러가지 자료를 검색하여 닭장 아래 30cm 까지 땅을 파고 닭장망을 깔아주었지만
지상부의 허술한 틈이 있을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바로 비닐 문에는 닭장망을 둘를 수 없어 지하부만 방어했더니 비닐을 찢고 들어온 것이다.
부랴부랴 동네 빈집 주변에서 버려진 스레트판을 가져와 다시 주변을 둘러싸주었다.
닭잃고 닭장을 고친 꼴이지만 나머지 다섯마리라도 안전하게 키울 수 있었으니 천만 다행이었다.
드디어 초란이 나오자 손주들에게 맛을 보여주게 되었다.
손주 녀석들이 먹는 계란을 위해 이제는 사료 선택에 정성을 쏟았다.
군청 농축산과에서는 청치와 싸래기를 염가로 축산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시판하는 사료와 비교하면 고급 사료인데도 값은 사료의 20% 수준이다.
청치는 쌀로 치면 현미와 다를 바 없다.
거기에 해바라기와 수수를 수확하면 사료용이 나온다.
매일 우리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도 사실은 다양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멸치나 생선의 잔반이 닭의 사료로는 고단백 덩어리다.
여름이면 수박이나 참외를 먹고 남은 껍질을 잘게 썰어 준다.
홍삼을 다리고 남은 삼 찌꺼기도 닭 몫이다.
녀석들이 먹는 사료가 곧 계란의 영양과 맛을 결정한다.
며느리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계란을 줄 수 있게 됐다고 감사해 한다.
암닭 네 마리가 낳은 계란은 하루 평균 두 세개에 불과하니 세 손주들에게 주기에도 빠듯하다.
우리 부부나 자식들은 아예 계란 구경을 못한다.
모았다가 손주 녀석들 챙겨 주기 바쁜 것이다.
나머지 식구들도 계란 맛을 보일려고 다음 해에는 추가로 열 마리를 넉넉하게 보충했다.
그런데 새로 들여온 병아리들 태반이 졸거나 원인도 모르게 죽었다.
결국 다시 5일장이 열릴 때를 기다려 닭장사에게 교환을 요구했더니 죽은 것들은 증거가 없으니
안되고 졸고 있어 가져간 녀석들만 일부 교환하겠단다.
닭장사는 내게서 네 마리를 받는 대신 두 마리를 줬다.
그 틈에도 이익을 챙기려 든다.
싸울 수도 없는 거래를 하고 추가로 키운 병아리가 결국 두 마리 뿐인 셈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2년이 넘은 묵은 닭들이 차례로 자연사를 했다.
달리 사망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자연사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며칠 간격으로 멀쩡하게 살아 있던 닭들이 숫탉을 시작으로 차례로 죽은 것이다.
다시 3년 째 병아리 입양 시기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숫병아리 하나를 포함하여 7마리를 보충했다.
보름 정도는 닭장 안에 영역을 달리하는 망을 두르고 병아리들이 어느 정도 익숙하도록 관리했다.
그러나 합사한 후에 보니 큰 닭들의 구박이 여간 심하지 않았다.
결국 한 마리가 머리쪽에 구멍이 날 정도로 쪼여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목을 쳐들 수 없으니 사료도 먹지 못하고 끝내는 죽고 말았다.
또 두 마리는 왕따가 심했다.
생긴 것도 어딘가 닭보다는 매를 닮은 녀석들인데 비실거리드니
특별한 외상도 없이 그 중 한 마리가 죽었다.
여름철로 접어들어 이제 남아 있는 닭들은 별 탈없이 지내려니 했는데 아직 2년도 안된
큰 닭 두 마리가 마져 죽는 것이 아닌가?
자연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생애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계란을 낳은 닭은 모두 없어지고 중병아리 다섯 마리만 남았다.
그나마 왕따 당하던 나머지 한마리가 어느 날 갑짜기 또 사라졌다.
대낮에도 망 사이로 쪽제비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닭과는 인연이 없는 것인가?
닭이 죽을 때마다 뒷산에 닭의 주검을 던져 놓으며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내 집에서 키운 가축을 내 손으로 잡아 먹기도 어렵지만 녀석들의 장례를 치룰 때마다
여간 속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결국 남아 있는 닭을 키우며 다음에는 더 이상의 병아리 입식을 포기하기로 했다.
맛과 영양이 좋은 계란을 손주들에게 주겠다는 생각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가축도 때를 맞춰 먹거리를 챙겨줘야 한다.
닭을 방사하지만 밤에는 닭장 안으로 들여 보내야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기도 성가시다.
그런데 어둡기 전에 닭장을 잠그려고 밖에 나가야 하는 고역이라니....!
그러니 오래 출타할 수가 없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안절부절이다.
닭 밥을 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실감을 할까?
우리 부부는 개와 닭을 키우는 동안 장기 여행을 하지 못했다.
여행에 대한 미련도 없지만 오랫동안 집을 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사는 이유만으로 개나 닭을 꼭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축산은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해야 가능하다.
생업으로 양계를 하는 농가를 보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힘든 만큼 수입이 는다지만 비싼 사료값에 비하면 도시 소비자가 먹는 계란값은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든다.
소득과 상관없이 가축을 기르는 것은 나름의 목적이 있다.
외로움을 달래고 애정을 쏟을 상대가 그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활을 속박하는 성가신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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