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랑과 고랑
위 사진은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본 이랑이다.
지금 보면 참으로 엉성하고 못났다.
누구나 처음 농사를 짓게 되면 모든 것이 생소하다.
이랑이 무슨 뜻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시작하는 초보 농군도 적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렴픗이 이랑은 불룩 나온 부분이고 고랑은 배수를 위해 움푹 파인 곳을 뜻하는 것같았다.
농사용어로 고랑을 헛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정확한 개념은 두둑과 고랑을 합쳐 통칭하는 것이 이랑인데 이랑을 보통 두둑과
같은 의미로 혼용하여 쓰이고 있었다.
밭 만들기는 농사 짓기의 시작이다.
바로 이랑을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드느냐가 농사의 출발인 셈이다.
< 이랑의 방향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햇볕과 배수에 따른 토양 유실 문제와 결부된다.
즉 햇볕을 고려하면 남북 방향이 좋다.
이랑 전체에 고루 햇볕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작물이 오전중에 광합성을 주로 하기 때문에 동서방향의 이랑도 무방하다.
초겨울 서리가 내리거나 눈이 쌓였다가 녹는 것을 보면 동남향의 서리나 눈이 먼저 녹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땅의 온도도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3월 중순 경에 감자를 심을 때는 지온을 고려한 파종 방식을 택한다.
즉 두둑의 가운데에 심는 것이 아니라 동남편에 치우쳐 씨감자를 묻는 것이 초기 생육을 돕는다.
그러나 경사지의 경우는 또 다른 고려가 필요하다.
등고선에 따라 이랑을 만들어야 폭우가 올 때 토양 유실을 막을 수 있다.
만약 등고선이 남북 방향이면 금상첨화겠지만 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
대개는 등고선 우선을 택한다.
토양 유실 문제가 더 중요한 요소인 때문이다.
< 이랑의 크기와 높이>
주말 농장을 보면 대개 고랑이 아주 좁고 두둑의 높이나 넓이도 낮고 협소하다.
물론 대량 생산이 목적이 아니고 자급자족하는 수준이니
고랑을 넓고 깊게 만드는 것은 과잉 노동을 하는 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추나 야콘, 고구마, 감자처럼 뿌리 작물을 심으려면
좁고 낮은 두둑은 결코 만족할 만한 수확을 기대할 수가 없다.
고추만 보더라도 30cm높이에 120 또는 90cm 넓이로 두둑을 만들어
2줄 또는 외줄로 심어야 정상적인 성장을 한다.
만약 좁고 낮은 두둑에 고추를 심으면 생육도 불량한데다 역병, 청고병 등을 비롯하여
온갖 병치레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좁고 낮은 두둑에 뿌리 작물이 충분한 생장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무경운으로 농사를 짓더라도 처음에는 깊이 갈이를 하고
두둑을 충분히 높인 다음에 고랑의 흙이 쌓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또한 좁은 고랑은 작업 능율도 떨어진다.
해충을 잡을 때나 북을 주는 작업을 할 때는 앉아서 하는 동작이 반복된다.
이 때 고랑이 좁으면 몸과 작물이 자주 접촉하여 운신하기도 거북하고 아주 불편하다.
당연히 불편하고 짜증나는 작업은 회피하게 되고 밭에 나가는 빈도가 낮아지게 마련이다.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는데 자주 들르지 못하니 결과도 좋을리가 없다.
한편 관행농법에서는 대량 생산이 목표이므로 트랙터로 로타리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농법으로 무경운 농사를 지으려면 처음에나 트랙터를 쓰고
다음 해부터는 소농기구로 밭을 만들면 된다.
대형 농기계가 밭에 들어가면 땅을 다져놓아 흙이 더 딱딱해지는 역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경운이라 하더라도 처음 밭을 갈 때는 먼저 쇠스랑이 등장한다.
로타리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우리 밭은 화학비료를 거의 주지 않으니 땅의 경반층이 많이 깊어졌다.
처음에는 쇠스랑으로 땅을 파면 쇠스랑이 튈 정도로 땅이 딱딱했었다.
3년 여를 지나면서 땅은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려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다.
무경운으로 밭을 만들려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 후에나 가능하다.
퇴비 등 거름을 두둑에 고루 뿌린 다음 쇠스랑으로 이랑 양변의 흙을 안으로 덮듯이 퍼 올리면
자연스럽게 거름이 흙속으로 들어간다.
다음은 괭이삽으로 고랑의 흙을 두둑 위로 퍼 올리는 작업이다.
쇠스랑 작업 때 고랑에 흘린 흙과 고랑을 평탄하게 하기 위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레귀로 두둑의 형태를 만든다.
고추나 부추 등은 물론 뿌리 작물은 두둑의 높이를 30cm 이상으로 해야 물빠짐이 좋다.
그리고 한 줄 심기를 한다면 가운데를 불룩하게 두둑을 만든다.
그러나 참깨처럼 여러 줄을 심는 경우는 두둑은 높되 평평한 두둑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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