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김장 축제
무는 된서리가 내리면 동해를 받는다.
특히 경기 북부는 일찍 서리가 내린다.
그러므로 10월 중순이면 서리에 대한 경계 태세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다가 기온이 급강하할 기미가 보이면 즉각 보온 작전에 들어간다.
그로 부터 김장 때까지 무밭에는 투명 비닐을 덮어 준다.
직접 된서리만 닿지 않으면 동해를 예방할 수 있다.
드디어 11월 중순경 수확하고 김장하는 날이 오면 축제의 한마당이 된다.
굳이 11월 중순에 김장하는 이유는 90일 배추를 기다리는 때문이다.
8월 중순 경에 배추 묘를 정식하다 보니 김장하는 날이 정해졌다.
3무 농법으로 배추를 키우려면 매주 한 번씩 액비를 주면서 마디게 자라게 한다.
화학비료 덕을 거의 못본 대신에 다양한 자연 자재를 투입하는 것이다.
무 역시 배추와 비슷한 방법과 환경에서 재배하지만 고추 밭에 추가로 더 혼작을 한다.
깍뚜기를 비롯한 무 김치가 여간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무로 뽑아 먹기도 하거니와 고추밭의 무 시래기는 훨씬 부드럽다.
관행농처럼 웃자라게 하지 않으니 작아도 단단하고 야무지다.
그 결과 겉모양은 관행농으로 키운 무의 절반도 되지 못하지만 맛과 육질은 전혀 다르다.
짭짤이 토마토를 만드는 요령처럼 무의 수분이 일반 무에 비해 현저히 적기 때문에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고 김장 후 오랜동안 육질이 무르지 않게 된 것이다.
겉만 풍성하게 키운 무와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이런 무를 시장에서 판매한다면 못난이 취급을 하고 가격도 형편없이 받을 것이다.
따라서 자가 수요로 재배하지 않으면 그런 무를 만들 이유가 없다.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무로 김장을 하는 셈이니 자가도취에 빠질 만 하지 않은가?
김장 때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힘든 일을 남자들이 맡아주면 짧은 시간에 작업을 마칠 수 있다.
나는 김장 전날 미리 배추와 무를 창고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작은 손수레로 옮기려니 수십번을 오르내린다.
크게 키우는 것이 잘 하는 것으로 알고 마냥 키웠더니 기껏해야 배추 다섯 포기를 실으면
손수레가 가득차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작년까지 우리집 배추 한 통은 대체로 8kg나 되었다.
외줄로 주간 거리를 띄우면 배추 통이 커진다.
기록 한 번 세운답시고 무조건 크게만 키웠더니 안식구는 불만이 많았다.
제발 다루기 쉽게 조그맣게 키우란다.
내가 봐도 너무 커서 네쪽으로 갈라 놓아도 여자들이 다루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금년부터는 주간 식재 간격을 좁혀 배추통을 작게 키우고 있다.
드디어 김장하는 날이 닥치면 마치 축제 마냥 온 집안 식구들이 총 동원된다.
처형과 큰 댁 안사돈, 그리고 두 며느리가 하루 전에 도착하여 절임 작업에 들어간다.
나머지 사돈네 식구들과 직장 때문에 전날 오지 못하는 처형네 조카 가족들도
김장 당일 아침 일찍 도착하면 김장 대작전이 개시된다.
나는 김장 전날 배추를 쪼개 나누는 작업을 하고 김장날은 무채 치기와 속 버물기를 맡는다.
여자들이 하기에는 힘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힘쓰는 일을 남자가 맡아주면 작업이 한결 수월하다.
예전에는 관심 밖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내 몫이 되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미리 배추와 무를 시식하면서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너무 달고 아삭거린다고 칭찬이 늘어진다.
우리 밭에서 나는 배추로 김장을 하면 오래 까지 김치가 물르지 않아 아삭거리는 육질이 일품이란다.
김치 맛을 본 처형네와 사돈댁까지 합동으로 우리집에서 김장을 하게된 까닭도 바로 배추 때문이다.
요즘 며느리들이 김장하기를 귀찮아 한다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김장은 힘드는 줄 모른다.
자연스럽게 부모 세대의 김장 솜씨가 며느리들에게 전수되는 효과도 있어 김장 축제를 하기로 했다.
배추 맛이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간 농사지은 보람이 있다.
칭찬 한마디에 언제 그렇게 수고했던가 싶다.
아무렴 무 배추에 준 액비가 어떤 것들인데 하는 자랑이 늘어진다.
여러가지 좋은 과일과 약초를 효소로 거르고 난 것들,
홍삼 다린 찌꺼기까지 우리고 발효시킨 액비가 아니던가?
당연히 달고 영양이 고를 수 밖에 없다.
배춧잎도 적당한 농도의 녹색에 윤기가 흐른다.
배추 속도 꽉 차서 노란 잎이 고소하다.
지금까지는 고추가 흉작일 때도 우리는 충분히 자급자족이 되었다.
김장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 농산물은 모두 우리 밭에서 나온 것들이다.
심지어 수세미 효소액 까지 투입되었다.
멸치 액젖도 산지에서 직송된 신선한 상태에서 몇 년을 삭혀서 쓰고 있다.
특히 금년에는 생강 대신 삼백초 우린 물로 비린내를 없애는 실험도 했다.
나머지 재료도 나름대로 엄선하여 미리 준비했다.
새로 사는 것은 생굴 정도이다.
김장 자재 자체가 최고의 품질을 선택한 셈이다.
그러니 점심도 수육에 막 담은 김치가 전부지만 게눈 감추듯 한다.
모두가 축제 무드에 젖어 힘든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각자 가져갈 양을 풍성히 포장하고 남은 배추와 무도 두 며느리가 챙겨 가져간다.
마음에 걸리는 친정 동기간들과 쌈배추라도 나누라고 준다.
남은 뒤처리를 위해 가족들을 일찍 보내고 나면 우리 내외도 긴장이 풀리고 노곤하다.
합동 김장이 연례 행사가 됐지만 화기애애한 축제의 한마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맛이 귀촌해서 농사 짓는 재미가 아니던가?
'행복한 은퇴자 > 전원농가의 뱁새농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 통행로의 중요성 (0) | 2012.06.14 |
---|---|
29. 농사 카페의 나눔과 원 포인트 레슨 (0) | 2012.06.13 |
27. 가족 친지들과 함께 즐기는 수확의 기쁨 (0) | 2012.06.11 |
26. 기능성 작물과 효소 만들기 (0) | 2012.06.11 |
25.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원리 (0) | 2012.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