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작부 체계를 정하는 요령
작부체계란 기후조건과 지력유지를 고려하여 재배 순서를 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구체적으로는 주어진 농지 내에서 어떤 작물을 어디에 심을지 결정하는 것을 뜻한다.
연작을 피해야 하므로 새해에는 어느 밭에 무엇을 심을지 매년 구상을 해야 한다.
특히 바쁜 농번기가 다가오면 자칫 닥치는 대로 작물을 심기 쉽다.
미리 농한기에 작부체계를 준비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첩경이다.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작부체계를 정해야 할까?
우선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떠오른다.
1) 연작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 같은 장소에 같은 작물을 계속 심지 않으려고 하지만
토란은 3년, 고추는 5년 내 같은 장소에서 재배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작물에 따라 2~5년이나 휴작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재배학에서 배운 내용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면 동일한 곳에 같은 작물을 계속 재배할 때
작물의 생육이 뚜렷하게 나빠지는데 이를 기지(忌地, soil sickness)라고 한다.
그러나 농지의 한계로 연작이 불가피한 경우가 현실이다.
그럴 때는 퇴비를 충분히 밭에 투입하므로서 연작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 이와 같이 연작의 해가 적어서 굳이 윤작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작물은:
- 벼, 맥류, 조, 수수, 옥수수, 고구마, 무, 당근, 연, 순무, 딸기, 양배추, 양파, 담배, 호박 등
* 1년은 윤작을 해야 좋은 작물:
- 쪽파, 시금치, 콩, 파, 생강 등
* 2년은 같은 장소에서 재배하지 않는 것이 좋은 작물:
- 감자, 오이, 땅콩 등
* 3년은 같은 장소에서 재배하지 않는 것이 좋은 작물:
- 쑥갓, 토란, 참외, 강낭콩 등
* 5~7년 같은 장소에서 재배하지 않는 것이 좋은 작물:
- 수박, 가지, 완두, 우엉, 고추, 토마토 등
* 인삼은 10년 이상 휴작이 필요하다고 한다.
* 과수도 기지 현상으로 소위 해걸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수종별로 다르다.
- 기지가 문제가 되는 과수: 복숭아, 무화과, 앵두, 감귤류 등
- 기지가 문제되지 않는 과수: 사과,포도, 자두, 살구나무 등>
2) 토양에 따른 산도를 대충이라도 감안해야 한다.
만약 토란을 심었던 자리였다면 석회를 충분히 넣어야 한다.
토란의 석회 탈취가 커서 후작의 재배환경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만약 알카리성 토양에 재배해야 할 시금치를 토란 후작으로 심는다면
많은 량의 석회를 뿌려야 하는 것이다.
3) 햇빛에 어느 정도 예민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수박이나 토마토 등은 오이나 고추보다 광포화점이 높다.
즉 수박이나 토마토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야 한다.
반대로 오이는 직사광선을 피해서 심는 것이 좋다.
또한 키가 큰 참깨 옆에는 상추같은 작물이 어울린다.
열무를 고추밭 이랑에 같이 심는 것도 혼작의 잇점이다.
그러나 만약 키 큰 수수나 참깨 등을
토마토나 수박 옆에 심으면 그늘의 피해가 올 것이다.
4) 습도 역시 참고가 되어야 한다.
토란은 비교적 습한 곳에서 자란다.
생강도 배수는 물론 잘 되어야 하지만 건조한 곳보다는 습도가 높은 곳이 좋다.
5) 작물간의 짝짓기(혼작)도 관건이다.
팥을 옥수수 옆에 심었더니 처음에는 옥수수와의 영양쟁탈로 생장이 매우 느렸다.
그러나 옥수수 수확 후에 옥수수가 더 이상의 영양 흡수를 하지 않자 그 때서야 팥이 본격적으로
옥수수 대를 감고 아주 신나게 자랐다.
팥과 옥수수는 서로 의지가 되어 함께 심는 것이 좋은 경우이다.
오이나 참외의 주위작으로도 옥수수나 수수를 심는다.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방풍림이 되어 오이 노균병을 예방하고
진딧물의 이동을 억지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오이 근처에 호박을 심는 것은 해롭다.
호박은 바이러스가 많아 바이러스에 약한 오이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옥수수나 수수는 중경식물이라 잡초 억제 효과가 있다.
토마토는 대파와 뿌리끼리 서로 영양을 주고 받으며 대파의 냄새가 토마토의 해충을 쫓는다.
참깨와 고구마의 짝짓기도 해볼만 하다.
우선 비슷한 시기에 파종하거나 심기 때문에 관리가 용이하다.
단 파종 시기를 조정하여 고구마 순이 참깨의 발아를 방해하지 못하게 할 필요는 있다.
고구마는 자외선을 싫어하는데 참깨가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를 줄 뿐 아니라 참깨의 뿌리에서
불용 인산을 분해하는 물질이 나오므로 고구마도 덕을 볼 것이다.
또한 참깨는 쓰러지지 않게 줄을 매줘야 하는데 고구마 순이 참깨를 지탱해주게 되므로 도복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고구마는 비닐 멀칭을 할 경우 두둑 양쪽 경사지에 구멍을 내 주어야 통풍이 되고 수분 흡수가
용이한데 참깨 비닐은 자동적으로 구멍이 나있으니 애써 따로 구멍을 내는 수고를 덜게 된다.
수확기에는 참깨를 먼저 베게 되므로 고구마 수확에 전혀 지장이 없다.
고추밭에 무나 배추를 심기도 한다.
이때 무 배추를 두둑의 약간 하단부인 경사진 곳에 심거나 파종한다.
특히 고추밭에 추비할 때 고추묘 사이에 비닐을 째고 깻묵과 재를 넣게 될 경우,
같은 곳에 무나 배추를 심으면 추가로 비닐을 찢을 필요도 없고 영양 흡수에도 좋다.
(내 경우 화학비료 대신 깻묵과 재로 추비를 한다.)
8월 중순에 무와 배추를 심게 되므로 고추는 이미 수확기에 들어가 피차에 큰 피해가 없다.
대신 무는 약간 그늘진 곳이 오히려 잎이 연하다.
땅의 효율적 이용에 도움이 되고 따로 두둑을 만들지 않아도 되어 일석이조이다.
단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면 망사터널 농법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해충의 공격을 방어하기 어려워 자주 벌레잡기를 해야 하는 불편은 따른다.
6) 작물의 특성을 이용한 배치
결명자는 뿌리에서 탄닌이라는 성분이 방출되는데
이는 토양 선충을 죽이거나 기피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무화과는 선충 피해가 많다고 하는데 결명자를 같이 심어보면 어떨까 싶다.
토마토나 오이도 토양 선충의 피해가 많은 작물이다.
결명자를 이들 작물과 혼작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명자는 다른 콩의 뿌리혹박테리아에게는 역기능을 초래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해바라기는 방사능 물질이나 납과 같은 중금속을 빨아내어 토양을 정화시킨다.
매년 돌려가면서 심으면 좋을 것이다.
7) 단계적으로 재배가 가능한 작물인지를 고려한다.
토마토는 곁순을 떼어 삽목을 하면 잘 산다.
굳이 처음부터 토마토 모종을 많이 사서 심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방울 토마토와 큰 토마토 모종을 최소한으로 사서 먼저 심은 다음 곁순이 나오면 떼어 심는다.
한 토마토 줄기에서 5 단 이상 열매를 맺게 하지 않고 곁순으로 키운 토마토에서 수확을 한다.
가지도 삽목이 가능하다. 안식구가 굳이 실험을 하겠다고 해서 지켜보았다.
오후 늦게 가지 곁순을 따서 삽목을 하고 물을 흠뻑준다.
오전에 심으면 물을 많이 줘도 햇볕에 시들기 쉽다.
아직까지 가지 삽목을 했다는 자료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는데 결국 성공했다.
고구마 역시 먼저 난 순을 세 마디 정도 잘라 심으면 된다.
옥수수도 시차를 두고 심는다.
옥수수는 한 그루에서 잘해야 한 두 개의 열매를 거둘 뿐이다.
순차적으로 거두면 밭에서 따 먹는 기간이 길어진다.
당근은 품종에 따라 4계절 파종이 가능한 작물이다.
쪽파는 40여일간의 재배기간을 감안하여 언제라도 필요할 때 파종한다.
다른 작물의 후작으로 재배할 때 고려 대상이다.
9) 前 後作에 대한 연관성도 짝짓기 대상이다.
마늘은 지난 해 늦가을에 심어서 다음 해 6월에 수확한다.
따라서 마늘을 수확한 후에 심을 작물을 정해야 토지의 효율성을 높힐 수 있다.
양파 역시 마늘과 비슷한 재배 사이클이지만 추운 지역은 전년 가을 보다 이듬 해 땅이 녹은 후
모종을 정식하고 마늘과 비슷한 시기에 수확한다.
따라서 나는 마늘과 양파를 수확한 자리에 배추와 무우를 심는다.
무우 파종과 배추의 정식 시기가 8월 중순 경이므로 자연스럽게 작업이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겨울을 나는 동안 마늘 밭에 깔았던 은행잎이 자연스럽게 흙에 묻히면 배추 모종을 공격하는
해충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가 된다.
한편 감자, 고구마, 야콘 같은 뿌리 작물은 같은 뿌리 작물의 후작을 피하는 것이 좋다.
비록 연작은 아니더라도 뿌리 작물보다 다른 작물을 심는 것이 유리한 때문이다.
특히 무경운 농법의 경우 뿌리 작물을 수확하면서 자연스럽게 땅을 갈아엎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뿌리 작물의 후작으로 뿌리 작물이 아닌 것을 재배하는 것이 재배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8) 기타, 동선(動線) 등을 고려한 작물의 배치이다.
고추는 지주를 세워준다.
고랑을 너무 좁게 하면 작업에 지장이 많다.
가급적이면 고추 이랑 주변에는 키가 무성한 작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
다만 남북 방향으로 이랑을 내고 남쪽에 위치한 이랑 끝에 키가 큰 수수를 심어보았다.
강한 바람에 고추묘가 쓰러지지 않게 방풍 역활을 하도록 위해서다.
주변 다른 농지도 살펴야 한다.
만약 다른 농가에서 제초제를 뿌린다면 내 밭 중 그런 농가와 가까운 곳에는
오이나 고추를 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제초제 피해가 가장 클 수 있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키가 큰 것을 북쪽에 심도록 한다.
해는 보통 동남 방향에서 뜨므로 그늘을 피하기 위해서다.
전문가가 본다면 고려할 사항이야 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텃밭 수준의 초보 농삿꾼에게는 이 정도라도 참고하면서
재배 작물을 선정하고 배치하는 습관을 익히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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