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양봉의 공격이 시작되어 나들문을 좁혀 주었었다.
저녁 무렵 조용해져서 벌통 안에 귀를 대고 보니 윙윙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우리 토봉이들이 좁아진 나들문 덕분에
제법 방어에 성공한 듯싶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소문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 토봉이의 주검만 즐비하다.
밑바닥에는 벌집 부스러기와 토봉이의 주검들이 한데 쌓여 처참한 모습이었다.
기존 통을 눕혀 놓고 안을 보니 허망할 따름이다.
빈통을 대신 놓고 그 앞에 토봉이의 주검을 모아 놓았다.
내 나름의 장례식이다.
그러자 어제의 녀석들이 다시 떼로 몰려 왔다.
아마 다른 동료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녀석들은 포식자 처럼 토봉이의 주검을 헤치고 한조각의 꿀마져
약탈하려는 듯 벌집 부스러기를 헤쳐 놓았다.
그리고는 이내 꿀 냄새가 나는 원 벌통의 틈을 찾아 모여들었다.
나는 가빠를 펴서 벌통을 덮어
토봉이를 대신하여 복수를 하였다.
2~3일 뒤에나 벗겨내고 벌통내의 남은 꿀과 벌집을 모아
농사용 액비통에 넣을 계획이다.
접사 실력이 없어 희미하게 나왔지만
꿀 도둑의 신원을 사진으로 남겼다.
보기에 분명히 다른 토종벌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양봉이 틀림없을 것이다.
지난 2개월 남짓 유행성 전염병에 걸려 마지막까지 분투한 보람도 없이
우리 토봉이는 결국 양봉의 습격으로 끝장이 나고 말았다.
다섯 통 중 네통의 토봉이가 차례로 폐봉이 되면서도
나는 마지막 토봉이의 끈기에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8월 초부터 시작되었지만 최근까지 신봉이 나오고
요즘에는 애벌레 물어나르기도 뜸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달만 넘기면 벌의 수명을 감안할 때
내성이 생긴 종봉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약군이 된 벌통을 양봉이 약탈할 줄이야 ....!
처절하게 전쟁을 치루고 전사한 우리 토봉이들을 애도하며
그간의 투병 기간이 헛되이 되었다는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아마 한동안은 다시 토봉이를 들이지 않을 것이다.
속이 상한 때문만이 아니다.
전염병을 이기고 난 토봉이의 개체수가
얼마 동안은 지나야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과의 인연을 맺고 끝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다.
예전에 강아지들을 키우다 남에게 주게 된 후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
토종벌도 곤충이지만 떠나 보내는 이별의 아픔은 다르지 않다.
닭도 키우다 보낼 때가 되면 마음이 불편하겠지!
그러나 닭은 용도가 다르니 그러려니 할테다.
어쨋든 오늘은 토봉이에 걸었던 희망이 좌절된 날이다.
그간 토봉이와 보냈던 6개월 남짓한 날들이 즐겁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픈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사랑하는 토봉아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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