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전원 일기

생명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

예농 2009. 4. 24. 20:51

 

 

토란 무광이 싹을 내밀고 있다.

겨우내 땅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응축시켰다가 봄의 내음을 맡고 고개를 쳐든 것이리라!

무광으로 토란 종근을 삼은 것은 토란꽃을 보기 쉽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년생처럼 같은 생명이 휴면 후에 다시 깨어난 듯한 모습에 끌리기 때문이다.

어쨋든 알토란 보다는 풍부한 영양고에 터를 잡아서인지 싹부터 굵다.

 

그러나 종근이 크다 보면 파종이 불편한 점도 있다.

더구나 연작을 피하려고 밭을 바꾸려니 뿌리식물에 맞게 돌을 고르고 밭도 더 깊이 갈아야 한다.

이제는 해가 거듭되니 꾀가 나서 너무 많은 양을 굳이 수확할 욕심을 버렸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 남에게 퍼주고 나니 허탈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종량도 대폭 줄였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묻어두었던 야콘과 토란의 종근량이 너무 많이 남는다.

이를 어쩐다!

다행히 몇몇 지인들이 작년에 나눠준 것들을 겨울보관을 잘못하여 다시 종근을 얻으러 왔다.

그런데도 많이 남는다.

안식구는 퇴비장으로 보내자고 하지만 싹이 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이 녀석들도 금년 한해의 수명을 다하고 제 몫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주변 사람들은 이미 작년에 줄만큼 줬고

그렇다고 카페에서 나눔을 하자니 이 바쁜 기간에 택배 보내기에 손을 쓰기가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생각다 못해 아는 농약사 사장에게 의사타진을 했다.

여러 고객을 상대하니 수요자들에게 쉽게 전달이 될 듯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필요하던 참이란다.

내가 심을 만큼만 남기고 몽땅 넘겨주니 큰 짐을 던 기분이다.

 

그리고 어제 토란을 파종하니 또 얼마가 남는다.

그런데 오늘 마침 우리집을 방문한 친구 일행이 자기들도 주말농장을 하기로 했다면서

토란 종근이 있으면 나눠달라는 것이 아닌가?!

얼씨구나 하고 마져 주고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정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내 종근을 가져가 소중히 키울 것이라는 기대가 나를 즐겁게 한다.

겨우내 그 생명을 지킨 보람을 새삼 만끽하면서 말이다.

 

'전원생활 > 전원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가운 땅콩 싹  (0) 2009.05.21
고된 일과 후의 달콤한 휴식  (0) 2009.05.04
오랫만에 보는 주변의 꽃들  (0) 2009.04.17
누구를 위하여 호박을 심는가?  (0) 2009.04.04
다양한 풀잡기 전략  (0) 200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