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은퇴자/전원농가의 뱁새농법

13. 잔디 때문에 웃고 울다.

예농 2012. 5. 27. 19:10

(5) 잔디 선택

 

 

집 주변 경사지는 으례 잔디를 심는다.

한국형 잔디는 비싸기도 하지만 제대로 살아남지 못해 여러번 보충해서 심어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켄터기 블루 그라스>라는 서양 잔디가 쉽게 발아하고 잘 자란다는 것이다.

잔디 씨를 사서 경사지에 파종하고 차광막으로 덮어 두면 쉽게 발아한다.

종자 값도 싼데다 정말 번식력이 엄청 강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골치를 앓게 된 것이다.

경사지를 점령한 잔디가 세월이 흐르니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철도 침목을 계단으로 깔았는데 그 틈새로도 잔디씨가 들어가서 발아했다.

잔디가 계단 틈에서 자라면 계단을 딛고 다닐 때 자칫 미끄러질 수가 있다.

결국 일일이 가위로 깎아내야 한다.

 

 

 

경사지 뿐 아니라 돌을 깔아놓은 마당까지 잠식하기 시작했다.

예초기로 깎아도 조금만 길면 휘감겨서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한국형 잔디에 비해 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풀씨가 매달릴 때 쯤이면 키가 훌쩍 커져서 보기가 흉할 뿐 아니라 줄기도 강해 제초 자체가 힘들다.

전동차 모형의 잔디깎기 기계를 샀다가 경사지는 혼자 작업도 못해 결국 남에게 거저 주고 말았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꽃밭에도 들어가서 길게 씨앗을 달고 서있게 되니 정원이 마치 풀속에 갇힌 듯하다.

키가 큰 잔디는 잡초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자 깔아놓은 돌틈 사이로 다른 잡초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온다.

안식구는 아예 마당을 시멘트로 바를 것을 그랬다고 후회한다.

아마 우리가 도시의 시멘트 환경에 익숙해서 마당의 잡초마져 성가시게 여기는 탓일 게다.

경사지의 잔디는 아예 깎기를 포기하니

매년 제가 알아서 자랐다가 겨울에는 파랗게 새 옷으로 갈아 입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덕분에 겨울에도 파란 잔디를 구경한다는 점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더니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역시 한국형 잔디를 선택하겠다.

전원주택에서 차지하는 잔디의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부터 잔디 문제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어떤 품종을 선택하느냐 못지 않게 잔디를 식재할 면적이 더 큰 과제라고 보는 것이다.

대개는 전원생활을 하면 멋진 잔디밭을 먼저 상상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실제 살다 보면 남보기만 멋질 뿐 주인은 잔디 때문에 겪는 쓸데없는 헛고생을 피할 수 없다.

잔디가 제대로 잘 나지 않으면 잔디밭을 상전처럼 받들어 관리를 한다.

잡초라도 날라치면 뽑느라고 시간을 보낸다.

정기적으로 깎아주지 않으면 보기 또한 흉하게 변한다.

나는 잔디밭의 면적을 최소한으로 좁히고 나머지 땅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잔디밭에 정원이나 가꾸면서 전원생활을 하다 보면 남보기에는 신선같지만 본인은 무료할 뿐이다.

잔디 대신 약초를 심고 유실수를 관상수로 삼는다면 고독할 틈이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