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농사를 지으면서 당면하는 과제는 밭 만들기이다.
흙을 갈아 엎고 로타리라는 것을 쳐서 흙을 고루 섞은 다음
고랑을 파고 두둑을 만들면 이랑이 된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려니 당장에 농기계가 필요하다.
나는 우선 동네에서 공정 시세대로 트랙터를 빌려 갈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씨앗을 파종하거나 모종을 심으면 되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나 밭은 한 꺼번에 갈아 이랑을 만들자니 트랙터 빌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3월 중 하순에 감자를 심고 4월 중순에는 야콘이나 토란을 심는다.
그리고 나서 5월 초에 고추 등 모종을 정식하려니
내가 필요한 때 농기계를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참다 못해 결국 관리기를 샀다.
다행히 지자체 지원금이 백만원이나 되어 내 부담은 백2~3십 만원이면 되었다.
막상 관리기를 사용하니 편하기는 한데 경사진 밭은 옆으로 쓰러지려고 해서 쓸 수가 없다.
평지에 있는 밭이나 관리기를 쓰고 야산의 밭은 트랙터를 다시 빌려 써야 했다.
한편 감자나 고구마 같은 뿌리 식물은 밭에 돌이 많으니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돌을 꺼내기 시작하여 여기 저기 무더기를 쌓아 놓았다.
나중에 배수로 주변을 비닐과 돌로 덮어 잡초도 막고 토양 유실도 막는데 썼다.
이제 수확기가 되어 땅을 파보니 어느 곳은 수분이 넘치고 어느 곳은 말랐다.
더구나 땅이 진흙이어서 아예 돌을 꺼내지 않은 만 못했다.
동네 사람들이 돌을 꺼내지 않는 이유가 작물이 돌의 오줌을 먹고 자란다나 하더니
그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돌을 다시 퍼붙기는 더 싫었다.
어차피 뿌리 식물을 돌려 가며 심어야 하니 밭의 돌을 꺼내는 것이 정답일 것이었다.
결국 밭을 만들기가 만만한 과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든 것이다.
인터넷 자료를 뒤지고 농업기술센터의 교육도 착실히 들으면서
밭 만들기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하게 된 배경이다.
밭은 작물을 키워내는 가장 기본적인 환경 요인이다.
물리적으로는 배수나 햇빛이 최적의 조건이어야 하고 돌과 같은 장애물도 영향을 미친다.
화학적으로는 토양의 산도와 영양 상태 및 중금속 등 오염도가 고려의 대상이다.
우선 물리적 환경을 보자.
이랑의 방향도 매우 중요하다.
동서보다는 남북 방향으로 이랑을 만들어야 채광이 고루 들어 작물에 좋다.
우리집 앞에 있는 경사지의 눈을 보더라도
남쪽 방향의 눈이 동쪽 방향의 눈보다 빨리 녹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사가 급격한 능선에서는 등고선을 따라 이랑을 만드는 것이
배수에 따른 토양 유실을 막는다고 한다.
급속한 유속으로 쉽게 토양이 깎여 나가기 때문이다.
한편 돌을 꺼내고 난 밭이 진흙이라 연탄재를 섞어 넣기로 하였다.
겨울에 읍내만 나가면 차 트렁크에 남의 연탄 쓰레기를 가득 실어 날랐다.
첫 해는 고랑에 쏟아 넣어 잡초 발생을 억제하다가
이듬 해 밭을 로타리 칠 때 섞어 넣는 방법을 택했다.
나름대로 일을 쉽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연탄재를 곧바로 땅에 넣기도 쉽지 않은데다
어느 뉴스를 보니 연탄재에 중금속이 섞여 있어 주의를 요망한다지 않는가?
그래서 가급적이면 그런 밭에는 먼저 옥수수나 수수를 심었다.
옥수수나 수수, 호밀 등은 뿌리가 깊이 들어가 토양내의 오염 물질을 잘 빨아 내고
뿌리는 깊게 박혀 썩으므로서 땅 속의 산소 공급과 배수를 돕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역시 중금속을 빨아내는 환경 정화 식물인지라 매년 돌려 가며 심는다.
연탄재는 물리적으로는 토양 개량에 도움이 크지만 화학적으로는 해도 끼친다니
이를 보완하거나 해소하려는 방법들을 동원해 본 것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토양의 산도를 측정해준다.
토양의 산도는 화학적으로 적정 시비를 위해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좋다.
작물에 따라 적정 산도가 다르기 때문에 석회와 같은 중화제를
얼마나 투입해야 좋은지를 계측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불루베리는 강산성의 땅이어야 좋다.
따라서 유황으로 산도를 조절하고
멀칭 재료도 솔 잎과 같은 침엽수로 하는 것이다.
반대로 고추는 석회로 흙을 중성화해야 칼슘 흡수가 용이해진다.
그러나 나는 아직 토양 실험을 하지 않았다.
이것 저것 섞인 것이 많아 토질이 매우 상이한 밭들이어서
제 각기 다른 시험이 필요해서다.
언젠가는 세밀한 구분을 해서 토양 검사를 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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