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전원 일기

농기계,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예농 2009. 6. 19. 18:45

 

 

농기계에 대한 고민이 한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장만한 것은 예초기다.

아무래도 풀과의 전쟁은 맨손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보호장구를 쓰고 예초기를 돌린다는 것은 한 여름의 찜통 더위를 더욱 무덥게 했지만

안전 사고를 예방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풀 속에 갇힌 유실수 묘목까지 잘라버리는 일이 발생하자

이제는 나무 근처의 풀을 손으로 뽑는다.

당연히 예초기의 활용성이 떨어졌다.

그러자 마침 어느 카페에서 안전성을 높힌다는 도우미 장비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택배로 받아 읍내 농기계상에서 조립을 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만약 선전처럼 안전성이 높다면 나도 카페에 사용후기를 써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안심하고 잔듸 밭 옆의 배롱나무 근처에서 풀을 깎다가

결국 또 나무 옆구리를 싹둑 도려내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돌밭에서 풀을 깎자니 돌에 부딛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도우미 장비가 추가되니 무게만 더 무겁다.

땅이 평탄하고 돌이 없으며 주위에 가는 나무가 없어야 작업이 수월하다는 결론이었다.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사용후기는 무슨 잠꼬대?!

 

다음으로 산 것은 전기 잔듸깎기 기계였다.

예초기로 잔듸를 깎자니 들쭉날쭉이라 고르게 깎는 기계가 필요해서다.

밀고 다니기도 편해 보였다.

단지 불편한 것은 전기줄을 길게 매달아야 하니 거추장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경사지였다.

경사지에서는 무거운 기계를 이기지 못해 혼자서는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려 수평을 잡기 힘드니 자빠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세 사람이 붙어 끈을 매고 작업을 해야 경사지 잔듸를 깎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기계는 사고 나서 지금껏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

 

마지막으로 산 것은 관리기이다.

밭을 갈자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매 번 트랙터를 빌려 일을 시키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할 때 마다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없다.

작은 밭을 갈고 나중에 또 필요할 때 또 부르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은 것이다.

이 번에는 농촌에 온지 3년 가까이 되어서 내린 판단이니 오판이 아니기를 믿었다.

그런데 또 후회막급이다.

무엇보다도 관리기의 쓰임새가 생각처럼 용이하지 않았다.

첫째는 경사지가 문제였다.

그러니 산쪽에 있는 밭은 아예 관리기를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조금만 경사가 져도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여간 힘들지 않았다.

온몸이 땀으로 멱을 감는다.

다음은 돌이다.

원래 우리 밭은 돌 때문에 관리기를 쓰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무수히 돌을 골라냈건만

로타리를 치거나 골을 탈 때면 돌에 관리기가 부딛혀 관리기가 요동을 친다.

자칫하면 다칠 우려도 있었다.

더구나 약간이라도 경사진 밭에서 고랑을 타려면

구굴기 바퀴가 좁아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또 로타리를 치고 고랑을 타려면 줄 맞추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줄을 미리 매고 하자니 번거롭고 결국 이랑의 넓이도 달라지고 줄도 삐뚤빼뚤이다.

그나마 편리할 듯 싶어 산 멀칭기를 부착하려니 왜 그리 무겁고 복잡한지...!

결국 혼자 작업하기가 어렵다는 불편 때문에 반납하고 말았다.

로타리와 구굴기 만으로 관리기를 쓰기로 하니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은 멀칭이 힘들어 덕 좀 보려 했었던 것이다.

 

농기계의 또 하나 어려운 문제는 관리상의 애로이다.

예초기는 아예 매년 봄에 기계상에 가져가 손을 보고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관리기는 금년 겨울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벌써 부터 걱정이다.

누가 조언하기를 가끔 시동을 걸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연료를 다 쓰고 빈 통으로 보관해야 한다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된다.

그래서 봄에 쓰다가 연료가 남으니 가끔씩 엔진 시동을 걸어 보고 여름에 또 사용하기로 하였다.

다만 겨울에는 연료통을 비울 생각이다.

문제는 이듬 해 봄에 예초기처럼 관리기를 써비스 센타에 가져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트럭도 없으니 결국 사람을 불러야 한다.

돈 나갈 일 만 남았다.

 

전원생활은 귀농과 차원이 다르다.

나는 지금 귀농을 한 것인지 전원생활을 하는 것인지 분간을 못하겠다.

관리해야 할 땅이 넓다는 것이 문제다.

내 손으로 해결 할 정도가 아니면 포기하는 것이 옳다.

농기계와 친해지든지 땅을 묵히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처지다.

 

농기계는 더구나 나 같은 기계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기계를 다루는데 자신이 없으면 아예 농기계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농기계의 사용도 아무 곳이나 되지 않는 것인데 덜렁 샀다가 후회막급이다.

시행착오도 돈이 많이 들면 속이 상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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