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나눠주는 귀농인
유동석 |
"오지에서 나무 키우며 남에게 나눠주는 기쁨으로
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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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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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오지로 알려진 마을로 들어가 온갖 유실수와 관상수, 야생초를 키우며 살고 있는 유동석 씨. 그를 만나 귀농하게 된 계기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씨앗을 무상으로 나누어주게 된 사연 등을 들어보았다.
동천님 보내주신 당귀를 포기포기 심어서
어떤 얘는 크게 자랐고 어떤 얘는 그대로고 그렇습니다. 당귀는 그냥 한두 번 만져보기만 해도 향이 손에 배는 군요. 너무 좋아요. 근데 얼마나
키워서 먹지요? 잎과 줄기를 잘라서 먹는가본데 잘라먹으면 상추처럼 계속 크나요? 한방영양제로 담그는 건 뿌리를 캐는 건가요? - 하동 이쁜처녀
이쁜처녀님 당귀는 1년 만에 캐야 합니다. 가을에 캐도 되고 내년 봄에 캐도 됩니다. 당귀는 여자에게 아주 좋은 약재이기
때문에 말려서 보리차처럼 끓여 먹어도 좋습니다. 쌈채소는 어린 순으로 먹어야 합니다. 좀 센 것은 독하더라고요. 작은 것은 잘 안 큰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었다가 내년 봄에 캐세요. 한방영양제로 만들면 좋지요. - 동천
동천이란 사람에게서 당귀를 얻어다 심은 여성과
동천과의 인터넷 상 대화 내용이다.
사람들은 그를 “동천”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몰라도 닉네임은 잘 알고 있다. 동천하면 “아!
그 씨앗 나눠주는 사람”이란 반응이 금방 나온다. 그만큼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귀농인들 사이에 씨앗과 묘목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이로
유명하다. 유동석 씨. 올해 55세. 마르고 가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자세가 바른 사람. 경남 하동 오지에 사는 사람,
그가 바로 동천이다. 익산에서 군 생활 도중 갑작스레 병을 얻어 예편하고 절반 귀농한 상태. 그가 어떤 연유로 씨앗을 나눠주는 선심을 쓰고
있는지 사연이 궁금했다. 10월 중순 가을 하늘의 구름이 산뜻하게 보이던 어느 날, 경남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로 그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그가 가르쳐 준대로
하동읍을 빠져나와 청학동 들어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오른쪽으로 가면 남해가 나온다. 15분 정도 승용차로 달리자 횡천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다시 좌회전해 청학동 방향으로 8km 정도 들어갔다. 도로 양편으로 벚나무들이 아치 형태를 이루어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깨끗하고 고즈넉했다.
청암면 농협을 지나 산길을 오르자 갑자기 커다란 호텔이 나타났다. 조이랜드라는 10여층짜리 콘도로 널찍한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심곡 방향으로 계속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승용차 하나 드나들 정도의 좁고 굽은 길이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꼼짝없이 갇히는 길이다. 이리구불
저리구불 15분여를 올라갔다. 깊은 산골이다. 바람이 찼다. 다랭이 논이 조금씩 있고 계곡물 소리와 새소리만 들린다. 칠성봉 산장 간판이 보이는
자그만 삼거리에서 좌회전 해 300m만 올라가면 된다는 유씨의 말을 기억했지만 순간 집을 놓쳤다. 뒤에서 사람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유동석 씨였다.
유씨가 안내한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이 없었다. 그래서 길을 놓친 것이다. 100평 정도 되는 땅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근사한 전원주택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흙집을
기대했다. 그러나 콘테이너로 지은 농막과 평상 하나가 전부였다. 평상 위에 각종 씨를 담은 자그마한 병 30여 개가 두 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외는 잡초가 듬성듬성한 밭이 전부였다. 막막했다. 사진거리 때문이었다. 집이 있어야 그림이 되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산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돌아갈 일이 걱정됐다. 꼬불꼬불한 좁은 산길을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차와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불안했다. 그가 인터넷 상에 올려놓은 글들을 보면 적어도 이런 풍경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30그루의 감나무와
60여 그루의 매실 나무들도 잘 자라주고, 오가피나무를 비롯해 각종 약용나무와 식물들도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어 고맙기만 하다. 특히 맥문동
어성초 백화사설초는 올해 처음 심어논 것들인데 잘 자라주고 있다. 그동안 2,500평에 심어놓은 각종 작물과 나무들을 풀로부터 보호하느라 시간만
나면 풀 제거 작업을 신물 나도록 한 결과 이번 주를 끝으로 풀베기 작업은 어느 정도 마친 것 같다.”
도대체 그 많은
과실수와 약용나무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기자의 눈에는 성성한 잎을 달고 있는 앙상한 나무 몇 그루와 땅바닥에 축 처져 있는 배추 잎사귀
비스므레한 식물들만 보였다. 날씨는 또 왜 그렇게 쌀쌀한 지 반팔을 입고 온 게 후회됐다. 눈치 빠른 유씨는 얼른 농막 뒤로 사라지더니 자신의
옷을 가지고 나타났다. 옷을 입고 다시 천천히 둘러보았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였다. 칠성봉 산자락에 있는 자그만 촌락. 5가구가
전부다. 유씨의 땅 건너편 산중턱엔 흑염소를 키우는 축사가 보였다. 땅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냐고 묻자 유씨가 손으로 가리켜주었다. 땅이 단층
형태로 길게 가로로 누워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눈에는 잡초들만 들어왔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느냐고 묻자 유씨는 오래된
일이라고 대답했다.
“여기 뒤가
논골이라고 오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20여년 전 군 생활 할 때 월간 산이라는 잡지에 소개된 것을 보고 처음 와 봤어요. 그리고 해마다 서너
번씩 들렀지요. 그러던 중 위암에 걸려 수술 받고 예편 후 들어오게 됐습니다. 건강도 보살피고 나무들을 키워 남에게 나눠주고 하면서 살려고요.
5년 전 일이네요.” 위암은 초기 발견이라 다행히 수술로 나았다. 암 수술 후 5년 지나면 안심이라는데 5년이 지났다고 한다. 유씨는
장마철에 계곡물이 깨끗한 것을 보고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공기 좋고 물좋고 주민들도 착해서 좋다고 한다. 20여년이란 긴 세월 동안
마음에 두었던 땅을 구입했으니 즉흥적으로 땅을 사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사람처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유씨의 가족- 부인과
아들, 딸은 그대로 전북 익산시에 살고 있다. 부인은 직장에 다니는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같이 들어오지 못했다. 2, 3년 후 자식들을 다
내보내면 익산 집을 정리하고 그 때 부인도 들어올 예정이다. 유씨의 부인은 처음에 썩 내켜하지 않았다. 와서 보고는 황량해 들어오기
꺼려했다. 그러다 남편이 심어놓은 아름다운 유실수, 관상수, 약용나무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또, 남편이 지은 무공해 쌀로 지은 밥을 먹어보고는
서서히 마음이 움직여 이제는 좋다는 쪽이다. 유씨는 5년 전 당시 평당 4만 원에 2,500평을 구입했다. 전주인이 농약을 뿌리며
관행으로 농사를 지어 처음에는 메뚜기도 지렁이도 없는 병든 땅이었다. 익산에서 1톤 트럭으로 50차례 이상 퇴비를 날랐다. 공원의 낙엽을
긁어모으고, 왕겨, 돼지 닭똥 등을 가득 싣고와 뿌려주었다. 한 2년 하고 나니까 기름진 땅이 되었다. 유씨는 제초제와 농약을 안 쓰고 농사를
짓는다.
유씨는 왼편에 있는
논을 가리켰다. 듬성듬성 풀을 베어내 꼭 쥐 뜯어먹은 머리다. 농약을 안 친 증거라고 한다. 유씨와 얘기를 하는 동안 주변의 나무와 풀들을
가만히 보니까 비로소 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농막 앞 마당에서 몇 발자국 내려가니 또 하나의 논이 나타났다. 찹쌀이 자라고 있었다. 논
바로 옆에 자그만 텃밭이 있었다. 항암에 최고라는 백화사설초를 심어놓았다. 말려서 물에 삶아 이파리와 줄기를 먹는다고 한다. 유씨는 이어서 조게
어성초, 이건 맥문동, 저건 허깨나무, 요건 구절초, 그게 옥잠화...라고 가르쳐주었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간 예쁘고 아기자기한 밭이었다.
밭두렁을 넘어 옆의 밭으로 이동했다. 또다시 일일이 손으로 가리키며 이름들을 가르쳐주었다. 가시오가피 지리산토종오가피 두충나무 황칠옻나무
꾸지뽕나무 화살나무 등등. 앞으로 나아가자 또 다른 밭이 나타났다. 거기엔 달래 도라지 구기자 당귀 맥문동 매실이 있었다. 그 옆의 위에
또 다른 밭. 거기에는 오디 밤 감 자두 취나물 체리 살구 등 유실수를 심어놓았다. 목련 석류 개량보리수 적단풍 산초나무 탱자나무 개복숭아
도토리나무 고염나무 목백일홍 부용화 등등 부지기수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유씨는 묘목들을 심고 남은 것은 인터넷 상에 올려 원하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주기도 했다. “저기 있는 달래는 어머니 산소 옆에 난 걸 가져다 심었더니 저렇게 많이 번식했어요. 여기 나무들은 모두
3천여그루가 있습니다. 3분의 1은 지원 받은 거고, 3분의 1은 구입한 거고, 나머지는 자체 생산을 한 겁니다.” 유씨의 밭은 이런
15개의 밭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제서야 평상 위의 각종 씨앗들도 눈에 들어왔다. 옥수수 팝콘옥수수 오이 수세미 가지 돈부콩 호박 수수 기장 조
맨드라미 봉숭아 분꽃 나팔꽃 해바리가 백일홍 씨앗들이 병에 정성스레 담겨져 있었다. 순천의 농민에게서 볍씨도 구해놓았다. 내년에는 여주쌀 순천쌀
흑미 자광미 등을 심어 밥상도 풍성해질 것이다.
그 밖에 호박 오이
상추 등은 심어서 먹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준다. 취나물 곰취 머우 달래 돌미나리 돋나물 쑥 부추 돼지감자 등 다년생 식물들은 한 번
심어놓으면 번식률이 왕성해 몇 년 안에 풍부한 먹거리가 된다. 취나물과 곰취는 씨앗으로, 머우 돌미나리 돋나물 돼지감자 등은 뿌리로 번식한다고.
유씨는 약용식물에 특히 관심이 많다. 병이란 게 아파 본 사람만이 안다고 유씨 자신이 큰병 치례를 했기 때문에 효과가 좋은 약초를
아픈 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겠다는 마음이다. “장사를 하려고 했다면 저 밭에다 한 가지만 심거나 그랬겠지요. 농작물은 적게 짓고
약용식물을 많이 심었어요. 건강을 위해 들어왔다가 농작물 키우려다 오히려 해치면 안되잖아요.” 그런 뜻에 맞게 농장 이름도 에덴농장이라고
지었다. 그가 농장에 부여하는 의미는 이렇다.더불어 살아가는 인생,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인생, 나와 이웃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모두가 노력할 때 이 세상은 에덴동산으로 완성될 것이다.
유씨는 일주일 중
5일 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금요일 저녁에 익산으로 올라간다.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이곳은 겨울에 기후가
따스하고 눈이 별로 내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익산에 머문다. 유씨가 사는 집은 남의
집이다. 집주인은 진주에 살고 유씨가 전화비 가스비 전기세 등을 대신 내주는 조건으로 살고 있다. 집주인은 1년에 서너 번 밖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먹는 물은 계곡물을 호스로 끌어다 쓰고 있다. 군에서 다해주었다. 괭이, 삽, 예취기 등 농기구는 사서 쓰고 있고, 관리기는 고장 나면
고쳐주는 조건으로 집주인 것을 빌려 쓰고 있다. 유씨는 명절 때마다 이웃 사람들에게 식용유와 간장 한 병씩을 돌린다.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주말마다 농장을 비워 그 사이에 농장을 잘 봐달라는 의미도 있다. 유씨는 터만 닦아 놓고 가진 돈이 없어 집을 짓지 못하고 있다. 땅을
구입하고, 농막을 들이고, 농기구에다 나무 구입비 등에 가진 돈 1억5천여만 원을 모두 투자했다. 농지형질변경을 신청해놓고 1년 안에 집을 못
지어 취소당하기도 했다.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흙집을 지을 계획이다. 그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를 갚겠다고 한다. “청학동 삼성궁 못 미쳐서 무아정이라는 집이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합니다. 벌써 4,500명이
다녀갔다고 해요. 저도 뒤늦게 그 대열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유씨는 1백만 원
정도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익산을 왔다갔다 하면서 기름값이 만만치 않다. 1년에 3백만 원 정도 든다. 한 달에 쓰는 돈은 전기세
전화비 가스비 등이 2만 원 남짓, 핸드폰 사용료 3만 원 그 정도이다. 반찬은 집에서 가져오고 밥만 해먹는다. 유씨는 무공해 먹거리
생산과 나무들이 잘 자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만약 이곳에 들어와서 농사만 지어서 아이들 가르치고 가족이 먹고 살려면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5년 후 각종 나무들과 화초, 관상용 식물, 약용식물들이 농장을 풍성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눔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유씨는 최근 인터넷에 돼지감자 이야기를 올렸다. 돼지감자가 일본에서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돼 우리나라에서도
수입한다고 한다. 유씨는 우리나라도 돼지감자를 치료제로 사용할 날이 올테니 그 때를 대비해 종자로 키우자면서 돼지감자 종자를 나누어주겠다는
내용을 올렸다. “제 핸폰 번호를 가르쳐 드렸어요. 내년 3월에 꼭 연락하시라고. 돼지감자는 삶아서 그 물을 드셔도 되고 감자처럼 쪄서
먹기도 하고 깨끗이 씻어서 말려 가루를 내 수제비를 만들어 먹어도 됩니다. 종자를 심었는데 수확량이 많아 무상으로 나눠주려는 겁니다. 인슐린
주사를 맞는 분에게 드리려고요.”
유씨의 생활은
단조롭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고 명상을 한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한 후 곧장 밭으로 나가 하루종일 일을 한다. 오후 6시경 해가
질 무렵 밭일을 끝내고 혼자 밥을 지어 저녁을 먹는다. 잠시 라디오를 듣고는 밤 9시 경 잠자리에 든다. “전 이곳이 너무 좋아서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군에 있을 때 늘 꿈꾸던 생활을 실현한 셈이어서 너무 좋은 거지요. 작물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요. 이제 집 지을
일만 남았어요.” 조용히 죽을 때까지 나무를 키우고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주면서 그렇게 살다가 가겠다는 유동석 씨. 눈빛이
반짝였고 표정도 밝다. 전혀 암 투병 한 사람 같지가 않다. 삶의 목표가 서 있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분명해서 인가 보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산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유씨의 옷을 벗어 건네주며 그의 따스한 손을 마주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갑자기 그가 농막
안으로 들어가더니 펠트병 하나를 두 손에 들고 나왔다. 검은색의 한약 같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100가지는 아니지만 50여가지로 만든
약초발효주라고 했다. 그의 정성이 담겨져 있어 소중해 보였다. 몇 번 사양했지만 굳이 손에 안겨준다.
내몽고란 나라에도 유씨처럼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여자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황량한 벌판에 풀씨를 뿌리고 자그만 샘물의 물을 떠다가 물을 주어 자라게 했다. 풀이 자라
땅을 덮으면 나무를 심고 해서 녹지대를 만들었다.그녀 혼자 모든 일을 해내 나중에 정부의 인정을 받아 지원을 받기도 했다. 유씨나 내몽고의
여인이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연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 하고는 어딘가 다른 이들이다.
귀한 선물을 받아들고 차에
올라탄 후 시동을 걸고 칠성봉 험한 산길을 경적을 울려주며 조심스레 내려왔다. 석양의 호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달렸다. 남에게 베푸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난 뒤여서 그런지 호수 풍경이 더욱 멋지게 보였다. 마음도 안정되고 푸근했다. 불안하기만 했던 비좁은 산길이 어느새 끝나고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 | |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서 복사한 자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