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일반 농작물

[스크랩] 나의 고추 농사 이야기 (강문필/계간귀농통문)

예농 2009. 4. 24. 19:43

  나의 고추 농사 이야기 강문필
경북 울진의 유기농 생산자 모임인 방주공동체 대표
 


 

이십 년 가까운 유기농업 경력이 있다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농사일에 한계를 느낀다. 나름대로 오랜 고난 속에 깨달은 유기농업이기에 가능하면 잔머리 굴리지 않고 "하늘이 주시는 대로 거두리라"는 작심을 하게 되면서 풀도 안 뽑고 비닐 멀칭도 하지 않고 몇 년을 견디어 왔다. 그러다 조금씩 수확이 늘게 되자 자신도 몰래 욕심이 생기게 되어 지금은 비닐 멀칭은 물론이요, 병충해를 퇴치하고자 좋다는 미생물이나 퇴비는 죄다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 기상이변이 급증하여 아무리 노력을 해도 농사경비만 늘어날 뿐 만족할만한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농사뿐 아니라 인간사 모든 것이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어줍잖은 고추농사의 경험을 적어보기로 한다.

 

모판


  

고추는 원래 열대성 작물인데다 생육기간도 길어 우리 나라 같은 온대 기후대에서는 잘 맞는 작물이 아니다. 이런 지역에서 직파를 하면, 서리 피해가 없고 꽃샘추위도 지난 음력 삼월 보름 이후에 해야 하는데 그러면 생육기간이 짧아져 소출이 적게 된다. 그래서 고추는 반드시 온실에서 모종을 키워 심어 생육기간도 늘리고 소출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고추는 가뭄이 들어야 풍년이 드는 식물이다. 모판에서부터 정식 후 수확기까지 배수가 잘 되고 토양에 수분이 과다하지 않도록 경작지를 잘 선택해야 한다.

 

고추는 모종 농사가 절반농사라는 말이 있듯이 튼튼한 모를 길러서 본밭에 정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마다 씨앗을 온상에 파종하는 시기가 다를 수 있겠으나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은 해발 500미터쯤 되는 준 고랭지에 해당하므로 전역 온상을 만들지 않는 한 주로 양력 3월 초순쯤이 파종적기다. 그 말고 조금 따뜻한 지역에서는 2월 하순쯤이 좋다.

 

하우스 내에 가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파종 10여일 전쯤 충분히 완숙된 퇴비와 부엽토를 혼합하여 뿌린 후 폭 130센티미터쯤 되는 묘상을 만들어 둔다. 아니면 퇴비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숙성되도록 전해에 미리 만들어 두는 것도 좋은데, 모판을 일정하게 따뜻한 온도를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볏짚과 쌀겨를 이용하는 수도 있다. 볏짚과 쌀겨는 보온성이 뛰어나기 때문인데, 우선 맨 밑에다 볏짚을 깔고 그 위에 상토를 덮은 다음 쌀겨를 깔고 또 다시 상토를 덮는 식이다.

 

상토


  

종묘상에서 파는 상토를 사서 쓸 수도 있지만, 되도록 직접 만들어 쓰는 게 여러모로 좋다. 농자재를 뭐든지 돈으로 사 쓰게 되면 경제적이지도 못할뿐더러 농사의 참맛을 즐길 수도 없으며, 또한 파는 상토는 약으로 소독한 것이어서 위생상 좋을지는 몰라도 유기농업의 참뜻에 맞지 않는 면도 있다.

 

상토는 산에서 캐낸 흙이 제일 좋은데, 여의치 않으면 밭의 흙을 이용하는 수도 있다. 이럴 때는 풀씨가 들어가지 않도록 표층을 걷어내고 밑의 흙을 쓰는 게 좋다. 산에서 흙을 퍼 올 때도 마찬가지로 표층을 걷어내고 밑의 흙을 이용한다. 퍼 온 흙은 채로 곱게 걸러 내야 한다. 이식하기 전 파종용 상토는 되도록 퇴비가 적은 것이 좋다. 발아하는 데에는 자체 씨앗이 갖고 있는 영양만으로도 충분할뿐더러 자칫 퇴비에서 발생하는 가스에 장해를 입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퇴비는 산의 낙엽이 썩어 쌓인 부엽토가 제일 좋은데, 이를 주로 하고 여기에다 쌀겨, 깻묵, 축분 또는 인분 등을 켜켜이 쌓아 충분히 적실 만큼 물을 듬뿍 주고서 비닐로 덮어놓는다. 물 말고 더 좋은 것으로는 야채 효소나, 깻묵 액비가 좋은데 여의치 않으면 오줌을 뿌려도 좋다. 미리 전해 가을에 만들어 놓는 게 좋은데, 날이 따뜻한 계절이 아니므로 한 달에서 한달 반 정도 지나면 숙성이 되는데, 이때 한 번 뒤집어 주면 좋다.

 

다음엔 칼리 인산 성분의 훈탄이나 숯가루나 재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고추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재료이다. 훈탄으로 만들기 쉬운 것은 왕겨 훈탄인데, 나무나 볏짚으로 불씨를 약하게 피운 다음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고 또 확 타지 않도록 살살 왕겨를 뿌려가며 수북이 덮어놓는다. 그리고 공기 구멍으로 연통을 깊숙이 박고서 밤새 놔두면 까만 숯이 만들어진다.

 

훈탄을 만들면서 나오는 목초액을 받으면 일석이조겠다. 식용유 깡통을 반으로 잘라, 사방으로 구멍을 내고 위로는 연통을 끼울 수 있도록 동그랗게 구멍을 낸다. 연통을 끼운 다음 깡통 위로 볏짚을 덮어 불을 사른 다음 왕겨를 살살 뿌려가며 수북이 덮어놓는다. 연통은 5미터 짜리 주름관을 써서 깡통에 끼우고 주름관 반 정도에 삼각대로 받쳐 세우고 나머지 반은 기울여 끝에다 통을 받쳐 두면 절로 목초액이 받아진다. 훈탄이 다 만들어지면 물로 꺼야 하는데, 이때도 야채효소나 깻묵 액비를 희석한 물로 살살 끄면 비료 효과가 더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상토의 배수성을 높이기 위해 모래나 맥반석을 섞는다.  이들의 비율은 흙 50%, 퇴비 30%, 훈탄 10%, 모래 10% 정도가 적당하다.

 

파종


  

고추씨는 물에 불리거나 싹을 틔우지 말고 파종하는 것이 좋다. 모든 식물은 배아가 싹트는 순간에 엄청난 저력이 생겨 스스로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발휘하는 법인데, 인위적으로 물에 불려 싹을 틔워 파종하면 생명의 저력을 상실하게 되어 유약한 모종을 길러내는 원인이 된다.

 

파종할 때는 나중에 이식할 상토와 달리 퇴비 없는 상토에 심는 게 낫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씨앗이 싹을 틔울 때는 적당한 물과 온도만으로 충분하며, 자칫 퇴비 가스에 장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퇴비가 충분히 숙성되었다면 크게 무리는 없으니, 이중으로 만들기 귀찮으면 그냥 준비한 상토를 써도 무방하다.

 

모판에 심을 때는 이랑 간격 10센티미터, 포기 간격 2센티미터 정도로 씨앗을 파종한 후 위에다 모래나 왕겨를 살짝 덮어주고 물을 뿌린다. 왕겨는 보온 효과도 주지만, 왕겨나 모래가 말랐는가를 보고서 물을 줄 때를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풀을 막는 피복 효과도 있다.

 

꽃샘 추위가 닥치는 추운 때에 파종했기 때문에 일교차가 크지 않도록 온도 관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우스 온실에다 심었더라도 반드시 비닐터널을 씌워야 하며 밤에는 비닐 위에다 부직포를 덮어주어야 한다. 온도가 영하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때가 되면 부직포는 덮지 않아도 된다.

 

대체로 10∼15일 사이에 발아가 되는데, 발아 후에도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속잎이 나오기 직전에 모종을 모두 뽑아 다시 심기(이식)를 해야 한다. 이식을 하는 이유는 묵은 뿌리가 끊어지고 새 뿌리가 많이 생기게 하여 튼튼한 모로 키우기 위함이다.

  

이식할 때는 포트에다 심기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되도록 그냥 모판에다 포기 간격 5cm, 줄 간격 10cm 정도로 심는다. 포트에다 심으면 뿌리가 갇혀 제대로 활력을 받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냥 모판 상토에 심어 키우면 뿌리가 제대로 자라 생명력도 좋고 나중에 수확도 더 많아진다. 나중에 정식할 때 뿌리가 상하지 않겠냐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정식하기 전 물을 듬뿍 뿌려주고 꽃삽으로 밑에서부터 퍼내면 아무 걱정이 없다.

 

모판에서 생육기간 동안 모종 상태를 보아 액비를 만들어 두세 번 뿌려주면 좋고 아침저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식한 모판에는 비닐 터널을 씌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실 이때는 꽃샘추위도 지나고 서리 피해도 없는 때이기에 하우스 안이라면 굳이 비닐 터널을 씌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지역에 따라 늦서리가 찾아오거나 꽃샘추위가 예상되는 곳이라면 비닐터널을 씌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이라면 불편하게 비닐 터널을 씌우지 않아도 별 걱정이 없다.

 

정식


  

파종 후 70일이 경과하면 본밭에 정식을 해야 하는데 밑거름은 앞의 상토 만들기에서 소개한 방법대로 만들면 충분하다. 계분이나 돈분 등을 장기간 사용하면 토양도 버리게 되고 병충해가 심해지므로 부득이 사용해야 할 경우 톱밥이나 낙엽, 왕겨 등을 혼합하여 충분히 발효시켜 사용해야 한다.

 

본밭은 우선 양지바르며 배수가 잘되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제일로 중요하다. 이랑을 만들 때에도 배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폭 30cm에 높이 30cm 정도 되는 이랑을 만든다. 이랑의 방향은 햇빛이 골고루 들면서 고추 포기들끼리 그림자가 지지 않는 쪽을 감안해서 정한다. 고추는 열대성 작물이라 자기 그림자도 싫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햇빛을 좋아한다. 특히 오전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전 햇빛에는 광합성 작용을 활발하게 일으키는 자외선이 더 많기 때문이다.

 

또한 고추는 통풍이 매우 중요한데, 나중에 열매를 맺어 다 자랐을 때를 염두에 두고서 밀식 재배를 삼가고 포기 사이를 넓게 해주는 게 좋다. 보통 50cm 내외면 적당하다. 폭이 좁은 이랑이 아닌 평이랑을 만들어 두 줄로 심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특히 배수가 잘되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모종을 심을 때는 재나 숯가루를 함께 묻어주면 좋은데, 구멍을 파서 물을 가득 담고, 재나 숯가루를 한움큼 뿌려준 다음, 고추 모를 집어넣어서 살짝 들어준 다음 흙으로 덮는다.

 

제초
  

제초제를 쓰지 않는 풀관리로는 제일 효과적인 게 무엇보다도 비닐 멀칭이다. 비닐 멀칭은 제초와 더불어 지온을 따뜻하게 유지해주고 습기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고추는 열대성 작물이라 지온이 따뜻하게 유지되면 열매 소출도 더 많다.

 

비닐은 그 자체가 작물을 오염시키거나 흙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비닐은 생태적인 농자재는 아니다. 비닐을 씌우면 흙은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흙 속의 생태계가 불안하여 해충이 발생될 우려가 있다. 또한 수확하고 나면 거두어 들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비닐 다음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종이 멀칭이 있다. 종이 멀칭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다양한데, 주로 비료 포대나 신문지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종이는 땅에 공기를 통하게 하는 장점이 있는데, 비료 포대 종이는 두꺼워 수명도 길고 제초 효과도 뛰어나지만, 신문지는 두세 장 깐다해도 장마가 지나면 녹아버리고 뿌리로 번식하는 쇠뜨기 같은 풀들은 힘이 좋아 종이를 뚫고 자라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포대 종이는 나중에 거두어 들여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고 신문지는 자연스레 녹아 버리니 그런 불편함이 없다. 물론 장마가 지나면 고추가 이미 다 자라 잡초가 제대로 크지도 않아 피해도 별로 없지만, 녹아버리고 난 뒤 가을, 겨울에 풀씨가 묻혀 봄에 풀이 무성해지는 약점이 있다. 그리고 비료 포대 종이든 신문지든 비닐에 비해 깔기가 더 불편하다.

 

비닐이나 종이에 비해 제초 효과는 약간 떨어지지만, 매우 생태적인 볏짚과 왕겨와 쌀겨, 풀 멀칭이 있다. 이것들은 피복효과로 잡초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지만, 발효되면서 발생하는 유기산이 잡초 씨앗의 발아를 막는 효과도 있다. 쌀겨는 이 가운데 제일 비싼 자재이지만 효과는 역시 제일로 뛰어나다. 또한 이런 생태 멀칭은 거두어들일 것도 없이 그냥 놔두면 흙이 굳지도 않고 흙속의 생태계도 훌륭하게 살아 있어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도 로터리를 칠 필요가 없을 만큼 흙이 부슬부슬하다. 무경운 농법에는 필수적인 제초법이라 할만 하다.

 

병충해 관리
  

한 가지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면 서로 병충해를 견제해줄 다른 식물이 없기 때문에 병충해가 기승을 부린다. 고추밭에도 수수나 참깨, 들깨, 대파 등을 띄엄띄엄 심어서 혼작하게 되면 대체로 병충해가 줄어들게 된다.

  

아무리 온갖 정성을 다해서 재배에 성공했더라도 장마철이 오래 지속되면 풍년을 기대할 수가 없다. 본인도 삼 년간 초기 생육은 물론 착과에 이르기까지 다른 농가에 비해 월등히 성장률이 좋았으나, 초여름 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가을철까지 지속되는 기상이변 때문에 무름병, 탄저병 등이 극심하여 치료하느라 온갖 수단을 다 부려 보았지만 농사경비만 가중되었을 뿐 거의 소득이 없었다.

 

탄저병이나 역병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비가림 재배 밖에는 대안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 경작지에 계속 연작을 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문제는 있을 것 같다. 농약을 전제로 개량된 씨앗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흉년을 경험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이란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거니와 본인이 생각하고 실천해 가는 농사방식은 다수확을 염두에 둔 농사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의 수확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고 고추농사 이십여 년에 풍작을 이룬 경험이 몇 번 되지 않는 터인지라 독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참고로 삼고 열심히 연구하여 자기 자신의 농법을 터득해가기 바란다.

 

강문필 - 경북 울진의 유기농 생산자 모임인 방주공동체 대표. 저서로 『하느님 개구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푸른소나무)가 있다.

 

글 가져온 곳 : 귀농통문 18호 | 2001년 여름

 

출처 : 오두막 마을
글쓴이 : 나무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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