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농촌에 들어가면
조그만 시골 교회에서
소박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으려니 했다.
농부 못지 않은 모습의 목회자 뒤를 따라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주민들 가정을 방문하기도 하고
주일이면 가난하지만 주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성도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려 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시골에 이사를 하자 마자
동네 유일의 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그리 멀지 않은 읍내에 있는 비교적 큰 교회에 나갈 수도 있지만
더 가까운 지역 교회를 두고 다른 교회를 간다면
결코 덕이 되지 않을 듯 싶었다.
물론 이단인지 여부는 알아 보았다.
의외로 목회자의 설교도 도시의 대형 교회 못지 않게 유창하였고
교회 건물도 그리 좁지않아 새로 짓자고 할 것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성도들이 대부분 노인들일 뿐 아니라
그나마도 남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은연중에 걱정이 앞섰다.
목회자의 기대가 엄청 크리라는 스트레스가 엄습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의 강력한 권면이 여러 모양으로 나를 괴롭혔다.
우선은 내가 시골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할 일이 쌓였는데
교회 부터 봉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은 내가 여유가 없음을 알리고
주일 예배만 참석하기로 통보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자
목회자의 설교와 교회에 대해 돌아가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졌다.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그 역시 신앙의 덕이 되지 않으니 생략하고자 한다.
도시 교회에서 신물나게 겪은 한국교회의 병폐를
조그만 시골 교회에서도 또 만난 것이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제 교회를 바꾸기도 어렵고
나가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매주 목회자의 무언가를 의도하는 설교를 듣고 있자니
보통 고역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선교가 벽에 부딛힌 것은 목회자의 잘못이 크다.
예루살렘 성전에 바친 가난한 과부의 전 재산인 두렙돈을
주님의 축복을 받는 근원이라고 강변하는 목회자들이 아직도 있는 한
한국 교회는 망하는 수 밖에 없을 것같다.
예수께서는 당시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의 실상을
고발하시는 심정으로
자기의 제자들에게
과부의 두렙돈이 전 재산이었음을 상기시키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과부는 구제해야 할 대상이지
교회가 그 헌금까지 거두어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럼에도 당시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은
가난한 자의 전 재산까지 가렴주구를 하고 있슴을
예수께서는 한탄하신 것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목회자들 중에는
과부의 전 재산 헌금을 축복하신 것이라고 설교한다.
순종과 헌신 만이 믿음의 전부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겁을 준다.
나는 내 블로그에서 성경 말씀과 기도문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도저히 평상심으로 주 예수를 증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도 아마 내가 시골에서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꼭 필요한 모양이다.
나는 그저 묵묵히 교회 한 구석을 차지하고
버티기만 하기로 하였다.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예수를 믿기 때문이지
목회자 눈에 잘 들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는가?
바늘 방석에서 연단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주님이 나의 길을 안내하시리라 !
시골에 살면서 신앙 문제에 봉착하면
도시와 달리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모른다.
도시에서는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면 되듯이
교회를 바꾸면 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이웃들과의 관계나 믿지 않는 사람들 눈을 의식할 때
쉽사리 처신하기도 어렵고
신앙의 덕이 되지도 않는 것이다.
소위 전도 길을 막는 셈이다.
교회내의 불화가 송두리째 노출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농촌 교회의 모습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고 나니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역시 내가 전원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의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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