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전원으로 간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리얼
스토리
시골 생활에 뜻을 두고 외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 오랜 기간 정든 터를 떠나 새롭게 적응해 살아간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5년 이내에 도중하자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만큼 녹녹치 않은 전원생활. 이제 막 전원생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10년차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본다.
자리 잡지 못한 귀농
7년차
"밥보다 심오한 철학은 없다"
저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7년 전 귀농 수업을 착실히 마치고 귀농한 사람입니다. 이젠 농부가
다 되었죠. 땅에서 발붙이고 살자, 자연과 어우러져 살자 하며 이 홍성에 온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갑니다.
귀농을 하면서 특별한
무슨 성공을 꿈꾸며 온 것은 아닙니다. 욕심 없이 내 먹을 거리, 간단한 입을 거리 아껴가며 그렇게 소박하게 농사지을 생각에 왔습니다.
처음부터 큰 돈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에 살아남기 위해 밤낮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논밭 합해 약 3천 평을 가지고 있지만
생활비에 아이의 교육비까지 대려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더군요. 홍수 피해나 병해충이 도는 날에는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집니다.
무농약, 무제초제를 배운 요량대로 실천해가며 먹고 사는 것에 매달리다보니 어느새 깊은 주름만이 얼굴에
가득합니다. 주름지고 허옇게 샌 머리가 싫으냐고요? 그런 건 아닙니다. 힘든 농사인 줄 모르고 온 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교육 문제가 우리 부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죠. 전원생활이다 귀농이다 하면 가장 쉽게 대안학교를 떠올리더군요. 저희도 당연히
그곳에 보낼 생각으로 왔었지만, 학교의 기숙사비 그리고 용돈은 아무리 쪼개 쓰려 해도 벅찬 현실이더군요.
어린 아이들이야 산에서
들에서 자유롭게 키울 수야 있다지만, 고등학생이 되어가는 시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결국은 농업인의 자녀들 학비를
면제시켜주는 읍내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뭐 어떠냐고 하실 분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한참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농사일에 쫓겨 작은 지원조차 못해주는 아비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착잡합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등록금이
싼 지방 국립대에 입학한 아들은 주말마다 틈틈이 내려와 농사일을 거듭니다.
물론 돈이 많아야 훌륭한 부모는 아닙니다만,
나야 발에 흙 묻히고 사는 게 좋아 도시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왔지만, 아들에게도 그런 것을 강요했던 것 같아서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 시골에서 반듯하게 자란 아들을 보면 너무 감사합니다. 부모님 고생한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오히려
생활비를 보태는 아들을 볼 때마다 대견하고 고맙더군요.
처음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왔을 때의 그 부풀었던 기대감은 7년간
한시도 편히 쉴 수 없는 여유 없는 생활에 까마득히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땡볕에서의 노동은 피부와 몸을 늙게 만들었지만, 저희
부부는 이 시골에 내려온 걸 결코 후회하진 않습니다. 가진 건 없지만 아내와 살을 부비며 서로 존중하며 정직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귀농도 전략이라고들 합니다. 그냥 편히 농사만 지으려 한다면 거진 실패의 쓴 잔을 마신다고들 합니다. 성실하게만 순박하게만 농사를
지어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알음알음 소농으로 지인들을 통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저 같은 경우가 어찌보면 그들이 말하는 실패의
예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홈페이지 관리나 방송 매체를 통한 홍보는 물론이고 농사도 기업체 운영하듯 열의를 가지고 새로운 품종 개발에
열을 올리는 열혈 농사꾼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열의는 제가 봐도 멋집니다.
하지만 제가 그릇이 작은 탓인지, 그럴 자신도
없고 이렇게 평범하게 농사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몸도 마음도 고될 때가 많고 큰 수익을 얻은 적도 없지만 땅에서 직접 재배한 작물들을 보며
지난 7년간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들보고도 그러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저와 제 아내의 선택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문제의 현실
"명쾌한 해답은
과연 어디에?"
경기도 가평에 자리 잡은 지도 이제 꼬박 8년이 다되어 갑니다. 처음 이곳에 내려 올 때 6살 이었던 큰 딸애가 이젠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도시를 떠나오면서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저에게는 두 딸의 교육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었습니다.
처음에야 어려서 자연을 벗삼아, 그리고 동네 어른들을 선생님 삼아 그야말로 해맑고 총명하게 자랐습니다. 마을에 있는 작은 학교를 다녀도 그리
교육에 문제 될 건 없었죠.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명쾌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대안학교의 교과 과정에 대해서는 그 긍정적 교육 효과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지만, 돈이 많이 들뿐더러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
지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걸렸습니다.
농부의 자녀는 학비가 감면된다고 하지만, 기숙사비와 용돈만 하더라도 20~30만원은 족히
넘을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안난 것도 사실입니다. 도시에 있을 때야 아이들 교육비로 그 정도면 적게 들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소득원
없이 평범한 농사로 이 금액을 매달 벌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또 아이를 제대로 교육 시켜 보겠다고 멀리 유학까지 보낸다는
건, 도시에서 외국으로 유학을 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결국은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보냈습니다만, 이후에
고등학교는 도시로 유학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든 아이를 성공한 엘리트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교육은 도시에서 받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갈등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내가 귀농을 했으니 자식도 당연히 농부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질없는 욕심이도 생기지만,
알아주지도 않고 고생스러운 농부의 삶을 자식에게 쉽게 강요하기는 어렵더군요.
여러 기회를 주고 그 판단을
맡기는 것이 최선책이고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그러려면 돈이 드니 거참 교육문제는 계속 돌고 도는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골에 내려가기 전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면, 그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잘 알아보고 명확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부모 둘이서만 결정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물어본 후 자녀가 원하는 길을 내 줄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봐야 하겠죠.
자신이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아이들의 꿈까지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버섯 농장 성공 스토리
"귀농은 결코 목가적이지
않습니다"
전 2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었습니다. 충남 당진으로 귀농을 한지는 10여 년이 되어가고
지난 몇 년은 실패도 맛보았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안정 괘도에 들어섰습니다.
귀농을 마음먹은 것은 약 15년 전입니다. 그
때부터는 틈이 날 때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친지를 찾아가 일을 배우고 시골 생활을 조금씩 익혀가며 귀농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갔습니다.
일반 작물 농사보다는 희소성이 있는 버섯으로 목표를 정한 후에는 거의 매일 버섯 관련 서적을 뒤적이고
자료를 스크랩하며 공부에 매달리길 2년. 귀농을 한 후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했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농사는 시작한지 3년 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더군요.
하지만 그동안의 공부와 의욕이 아까워 또 다시 버섯에 도전했습니다. 계속된 연구와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던지 차츰
수입이 늘었고 이제는 홈페이지도 만들어 인터넷 판매도 시작했습니다. 찾는 사람도 늘고 버섯의 품질이 좋다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얼마나
흡족한지 모릅니다.
전문 농사꾼이 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논과 밭에 씨만 뿌린다고 곡식이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란 거죠. 누가 그걸 모를까마는 이런 마음으로 시작해 실패한 분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작물을 재배하려는
생각을 기본으로 단기에 이득을 취하는데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농사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요즘에는 농산물들도
새로운 연구로 인해 새로운 방법으로 재배되거나 새로운 품종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변화해 두려워하지 말고, 변할 때마다 그 흐름에 함께
합류하려는 용기 또한 필요합니다.
경험과 지식 없이 자본의 절반을 농사에 투자했다가 수입 한 푼 없이 다시 도시로 이사할까도
고려하는 분들도 여럿 보아 왔습니다. 한 번 귀농했다가 다시 도시로 나가는 것에도 적지 않은 손실이 있습니다.
자본에 넉넉한
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귀농도 그 역행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귀농은 결코 목가적이지 않습니다.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경험한 사람에게 전원생활의 만끽은 코웃음도 안나올 말이죠.
아름다운
전원교향곡
"그 기본이 되는 네 박자"
은퇴 후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이 그리워서, 혹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농촌의 발전을 위해 귀농을 하려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4년간의 준비 끝에 전원행을 시도했습니다. 뭐 돈이 많았던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재능이 있어서 작품 활동을 한다던지 목공예를
한다던지 하면서 수입원을 낼 거리가 확실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맨발로 땅 위를 걷고 모든 풀밭이 내 안방이 되며,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의 막걸리 한 잔 그리고 어울릴 수 있는 이웃들이 그리웠습니다. 농사일 보다는 집 짓는 일에 관심이 있어 시골로 가면 그 일을
하리라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틈틈이 집 짓는 기술을 배우러 다녔고, 자금도 착실히 모아 5년 전 강원도 산골짜기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 온지는 햇수로 6년 된 셈이죠.
지금 생활을 물으신다면 아주 대만족 입니다. 각자 행복을 느끼고 만족하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꿈꾸시는 분들이 적어도 이것만은 알고 준비를 하셨으면 합니다.
첫 째로는 정말 여유가 많은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나 겪는 문제로 경제력을 뽑을 수 있겠습니다. 시골에서 살면 돈 들 일 없어 좋겠다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시골살이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습니다.
매달 꼭 들어가야 하는 돈이 보험료 합쳐 경차 유지비 15만원, 전기료 3만원, 의료보험료 4만원, 인터넷
사용료 합쳐 전화비 8만원, 닭 사료 2만원, 일간지와 농업 관련 잡지 대금 2만 5만원, 회비와 기부금 2만원, 그 외 경조사비 대충 생각나는
것만 어림잡아도 40만원이 훌쩍 넘는다 이 말입니다.
여기에 꼭 필요한 농자재와 공산품도 있고, 가끔 소주와 라면도 사야하고,
읍내 나가면 가끔 외식도 하고 싶고, 읽고 싶은 책도 있고….
재작년 겨울까지는 장작을 땠기 때문에 연료비 걱정은 덜었지만
지난해는 마을 분들이 너도 나도 장작 보일러를 들여놓는 바람에 땔나무 구하기가 어려워 연료비까지 한몫을 하더군요.
어찌어찌 빠듯하게
꾸려보면 한 달에 50만원인 생활비, 일년이면 6백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귀농 전에는 두 내외 두 달 수입도 못되는 그 돈을 벌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자연과 더불어 하는 농사 참 아름답지만,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현실은 현실입니다.
전원행을
하기 전 능력이 되는 한 적어도 2~3년 먹고 살 자금은 장만해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퇴직 또는 은퇴 후
모아두는 얼마의 자금이 그 기본이 되겟죠. 또 시골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농사 외의 기술을 익혀가지고 가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생활의 절제는 기본 자금력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적게 쓰고 적게 먹는 가난한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귀농을 하기 전에 몸에 익혀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농사 연습 뿐 아니라 씀씀이를 줄이는 생활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죠.
일년에 3천만원을 썼다면 이제부터는
딱 반으로 줄여 사용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큰 것 뿐 아니라, 전기, 물, 전화, 군것질 등 사소한 것들에서도 철저히
절약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환경을 잘 선택해야 됩니다. 경관이 좋은 자연환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정과 관용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장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이웃이 되는 그러한 장소면 좋습니다. 이러한 곳이어야만 일상과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하고 싶은 하나의 일을 찾아 그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자신의 삶에 의미와 보람을 갖게 해줄 무언가를 찾고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때를 허송세월로 멍하니 보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재화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삶을 탐닉하고 인색을 한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자연이 주는 많은 혜택에 몸과 마음을 개방하고 가족
모두가 인생의 변환점이 될 무언가를 함께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단, 도시에서의 물질적으로 넉넉했던 생활을 그리워하기 보단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 자체에 행복을 느끼며 지내길 바랍니다.
전원의 꿈,
빈틈
투성이의 집짓기부터 시작
전원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집을 지을까’ 가장 큰 관건입니다. 목조, 황토,
스틸, 통나무 종류는 무수히 많고 그 가격도 천차만별이죠. 하지만 전원생활 5년 결과 집은 집 일 뿐이더군요.
물론 가능하면
최상의 집 갖고 싶습니다. 한번 지을 때 제대로! 말이죠. 막상 살아보니 벽 모서리에 금이 가거나 칠이 벗겨진다고 해서 무슨 큰 일어 벌어지는
건 아니더군요. 이태리 대리석, 수입 원목 자재 등 값비싼 치장에 현혹되기 보다는 안락한 보금자리를 위한 최소한의 것만 갖추면 되지
않을까요?
‘단열은 물론이거니와 방음이 잘되어야 하고 빈틈하나 없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물론 집을 잘못 지으면 썩고
기울고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다면 대체 도시의 아파트와 다른 점이 뭐가 있겠습니까.
단열도 방음과 완벽한 시스템 창호 대신 새소리 드나드는 소박한 창문이 더 낫지 않을까요? 너무 완벽하게 고급스럽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이겁니다.
또 집을 짓는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집터의 바람의 방향과 집터에 드리워지는 산 그림자,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방향을 살펴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바람이 통하고, 한 밤에는 저무는 달을 볼 수 있는 창이 달린 집은 자연의 풍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가장 궁금했던 것이 들어가는 자금과 걸리는 시간이었지만, 빨리빨리 짓는 집은 결국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집의 어울림을 연구하는 시간은 반드시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또 반드시 내 땅에만 집 짓고
살란 법은 없습니다. 남의 땅에 집짓고 대를 이어 사는 경우가 가능한 것이 또 시골이니까요. 빈집 많은 시골에서는 전셋돈 몇 백 만원으로도
오래도록 잘 살 수 있습니다.
시골생활은 사실 편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가하지도 않고 풀을 베는 일조차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죠. 빠듯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좀 덜 먹고 덜 쓰더라고 농사를 지으며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또
그에 따른 계획도 꽤 착실하고 전망 있는 대책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전은 전혀 다를 수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합니다. 땡볕에서 호미를 들고 하루 종일 일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귀농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귀농을 원한다면 집짓기 전에 농지와
집을 임대해 한 해 농사를 지어보며 그 지역의 특화 농작물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는 뭣 모르고 집 짓고 호미를
들었지만, 그 덕에 가진 돈을 농사 자금으로 다 투자하고 여러모로 고생 좀 했습니다. 적어도 2~3년간의 소득 없이 지낼 수 있는 여윳돈은
필수인 듯도 싶습니다. 능력만 된다면 건물세나 인세를 기본 소득으로 하면서 시골 생활을 하면 어느 정도 여윳돈이
생기죠.
그리고 적어도 시골에서 살 마음이 있다면 간단한 집수리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매번 남에게 도움을
부탁하다가는 고장 때마다 스트레스가 여간 아닐 겁니다. 저도 처음에 비가 새는 지붕을 고쳐야 하는데 경험이 없어 발발 동동 구르다 이웃
아저씨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내가 이런 것도 못하냐는 핀잔도 가히 기분 좋진 않았지만, 고치는 모습을 멀뚱히 보고
있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그러니 집 한 켠 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연장들을 고이 모셔두고 못하더라도 하나씩
고쳐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아, 이게 시골 삶이구나 했던 것은 식구나 다름없이 살아가는 이웃들입니다. 텃세도
물론 있기야 있었지만, 워낙 다들 좋으신 분이어선지 노력하니 금세 마음을 알아봐주시더군요. 사실 시골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로의 집안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형편은 이해하고 상부상조 하는 것이 시골이더군요. 설게비를
깎아주는 사무소 사람들, 고개 넘어 대형 할인 매장이 생겨도 집 앞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서로가 서로의 물건을 사고 팔아주는 식입니다.
시골생활 몸은 고되도 이렇게 이웃간의 마음은 여유로워 정말 살 맛 납니다.
정말 시골에 내려와 살고 싶다면, 농사 계획이다
집짓기다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