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농 2006. 1. 20. 21:25
세끼 따뜻한 식사에, 아프실 때 연락해줄 사람이라도 있다면….”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전통적인 가족 구성의 틀이 깨지면서 연로하거나, 홀로 계신 부모를 둔 자식들에게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노인들의 주거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노인정(경로당)과 양로원으로 대변되던 노인시설이 노인복합복지단지인 ‘시니어 콤플렉스(실버타운)’로까지 진화했다.

될성싶은 사업을 암시하듯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료시설 조성에 나서는가 하면 요양과 양로 중심의 컨셉트에서 탈피, 일거리를 제공하는 공동체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이런 가운데 특화된 운영방식을 보유한 ‘쉼터’도 재조명받고 있다.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남은 시간에 충실할 수 있는 보금자리로서의 제기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지역 밀착형 ‘은퇴농장’

“은퇴농장요, 광천쪽으로 쭉 가다 장곡면사무소에서 쬐끔만 올라가면 오른편에 있시유.”충남 청양을 거쳐 홍성을 향하다 만난 시골 아주머니로부터 길 안내를 받았다.

정작 ‘유명한(?) 곳’을 찾아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큰길을 벗어나 비포장 산길에, 녹아내린 눈으로 질펀한 길을 걷다 보니 차와 신발에 황토흙이 덕지덕지하다.

지난 1995년 문을 연 은퇴농장은 전원마을의 한 형태로 농민이 농장을 운영하면 은퇴자들이 들어와 임대 농업을 하는 방식이다. 허가·신고시설이 아니다 보니 ‘농장주인’ 김영철(55) 원장이 스스로 구축한 독창품이다. 운영인력은 김 원장 가족(3명) 외에 식당일을 보는 아주머니 한 분뿐이다. 현재 입주자는 20명으로 약 40%가 개장 당시부터 생활하고 있다.50대에서 80대 입주자들은 농사며 운전, 환자 케어까지 일을 분담하며 가족 공동체 생활을 영위한다.

5000여평 부지에 숙소로 사용하는 조립식 건물과 비닐하우스(12동), 텃밭과 동물 사육장 등이 있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식당이 마련돼 있었다.


실버타운이나 노인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료실과 체력단련실, 목욕탕, 매점, 강당 등의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역과 연계해 작업이 없는 날에는 단체로 목욕탕도 가고 외식, 장보기 등도 한다. 환자가 생기면 지역 병원에서 응급차가 달려온다.

김 원장은 “경험이 많은 잉여인력들의 귀농으로 새로운 농촌모형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이제는 지역에서도 (입주자들을)동네 어른으로 받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은퇴농장은 지난 96년부터 직접 생산한 유기 농산물을 도시민들에게 직배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현재는 지역조합이 구성돼 생산만 담당한다. 입주자들은 희망에 따라 비닐하우스를 배당받아 수확 및 포장작업을 맡고 매월 품삯을 받는다.1인 기준 한달 관리비(35만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입주자도 있다. 소득원 개발을 위해 은퇴농장 상표로 가공식품(김치와 절임류 등)를 생산할 계획도 추진중이다.

“좋은 이웃있어 행복”

공주시에 위치한 공주원로원은 한국장로교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요양과 양로 기능이 복합된 노인복지센터이다.

지난 7월 증축을 통해 최고급 원룸형식의 실버텔과 치료 및 요양을 겸할 수 있는 너싱홈을 갖추고 있다. 특이점은 입주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사전에 인성과 심성검사를 거쳐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동거인이 될 수 있다.

차기천 원장은 “노인복지는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일반인에 대해 문호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주원로원의 수용가능인원은 200명이지만 현재 실버홈에 50여명, 너싱홈에 20여명이 입주해 있다. 안양에서 공주로 이전한 1996년 당시만 해도 텃밭 등 일거리창출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입주자들이 고령화(평균연령 85세)되면서 폐쇄했다. 그 자리에는 주변 농민들이 참여, 대체농업 작물로 연꽃을 재배해 백련차 같은 웰빙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평생을 목회자로 활동하다 이곳에 정착한 김용무(80)·이국화(74)씨 부부는 “아내가 아픈 상태여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입주를 결정했다.”면서 “공부도 하고 환자를 위해 작은 힘도 보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특화사업에 경제적인 지원 필요

노인복지시설은 기존의 요양·양로 개념에서 생산시설까지 갖추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농림부도 전원마을사업 시행지침에 은퇴농장을 포함시켜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등 활성화 기반을 구축했다. 이미 은퇴자들이 모여 전남 나주시에 고령친화형 은퇴농장 건립을 추진중이며 경북 성주군은 지자체가 직접 나서 종합복지형 은퇴농장을 준비하고 있다. 노인종합복지타운을 운영하고 있는 전북 김제시도 2만평 규모의 은퇴농장을 2007년 오픈할 계획이다.25평형 100가구를 건설해 분양하고 1만평을 농장으로 조성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사업 초기로 수요가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귀농 희망자 및 수요를 감안할 때 활성화 기반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인복지시설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부정책에 유연성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 관계자는 “난방비만 한달 평균 1000만원에 달한다.”면서 “유료시설이라도 사회봉사 목적이 큰 만큼 전기료나 가스료 등의 경감혜택이 있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은퇴농장의 경우 입주자가 55세 이상,20호(호당 20∼100평) 이상 건축시 도로와 상수도 등 SOC시설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여기에 실효성 지적이 나온다. 우후죽순과 같은 난립 및 미분양으로 인한 부실 운영 우려가 그것이다. 대규모를 지향하기보다 지역 상황에 맞춰 시설규모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지원항목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생산시설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은퇴농장 김영철원장은 “하우스나 축사를 지어주는 등의 지원을 통해 새로운 소득원 창출이 필요하다.”면서 “아파트와 결연을 통해 판로를 지원받고 도시민들은 주말농장 등으로 활용하는 ‘윈윈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통계로 본 노인들의 어려움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인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문제’로 조사됐다. 이를 반영하듯 가정의 행복과 자녀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30대에서조차 벌써부터 노후를 준비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05년 사회통계조사(3만 3000가구 대상)’에 따르면 노인 2명 가운데 1명이 경제적인 문제를 가장 큰 고통으로 꼽았다. 이어 건강문제(27.1%), 소일거리없음(6.8%) 등 일반적인 노인문제와 큰 차이를 보였다. 또 농어촌지역보다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직업이 없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자녀와 살지 않는 노인이 10명중 6명에 달했고 그 이유로 따로 사는 것이 편하다(38.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자녀의 직장·학업(20.6%), 자녀의 부담(16.0%)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2명중 1명은 향후에도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답했지만 여자(51.6%)와 연령이 높을수록(80세 이상 67.4%) 자녀와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절반 이상(59.1%)의 노인들이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을 호소했다. 생활비의 본인 및 배우자 부담률은 농어촌(64.1%)이 도시지역(56.6%)보다 높았고 2002년(55.9%)에 비해서도 5.32% 포인트나 상승했다.

60세 이상 노인들의 노후준비율은 48.3%로 전체국민 평균(63.5%)보다 떨어졌다. 준비되지 않은 이유로는 능력부족(51.7%) 자녀에 의탁(31.6%)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노후 준비방법으로는 적금(30.3%)과 국민연금(29.0%), 부동산운용(14.4%) 등의 순이었으나 60대 이하에서 활용하고 있는 사적연금 비중은 크게 떨어졌다.

특히 30대의 노후준비(69.1%)가 40대(69.4%)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고 여자보다 남자(68.6%)들의 노후 걱정이 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60세 이상 노인의 72.6%가 정부 등으로부터 복지서비스를 받기 원했고 분야별로는 건강검진(45.1%), 간병(17.5%), 취업알선(12.2%), 가사(6.9%) 등의 순이었다.‘건강검진’외에 남성은 취업알선, 여성은 간병, 연령이 높을수록 취업알선, 낮은 경우 취업여가프로그램 확대를 선호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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