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독거 노인
우리 동네에 혼자 사시는 노인이 몇 분이나 되는 지는 잘 모른다.
그 중 내가 아는 한 할머니는 연세가 93세나 된다.
아직도 건강하시고 비록 보잘 것 없는 초라한 누옥이지만 혼자 사시기엔 전혀 불편이 없다.
명절에 자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외로운 신세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기초 노령 연금으로 생활하시는 모양이다.
우리가 그 분을 뵌 적은 이사한 얼마 후 동네에 있는 교회 예배 때였다.
그 때만 해도 아직 80대 후반이어서 그리 눈에 띄는 대상은 아니었다.
그 분보다 더 연노한 분이 바로 우리 집 밑에 혼자 사셨는데 그 할머니가 몇 년 후 돌아가신 뒤에야
이 할머니의 존재가 부각된 셈이다.
어쨋든 이 할머니는 작은 연금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교회 헌금도 하신다.
안식구는 동네에서 남의 눈치가 보여 차마 그 할머니에게 각별한 대접을 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으로는 늘 관심의 대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던 며칠 전의 일이다.
동네 어느 축산 농가에서 동넷 사람들을 위해 소를 잡아 싸게 판다는 소식이 들렸다.
교회 식구들 우선으로 신청을 받는다고 권사님 한 분이 우리도 신청해보라고 권했다.
우리도 명절을 앞두고 좋은 고기를 살 수 있는 기회인지라 공동 구입에 동참했다.
우리에게 고기를 사라고 권한 권사 한분도 같이 고기를 파는 집사님 댁에 같이 가게 되었는데
그 권사님이 따로 좋은 특수 부위를 주문하면서 바로 그 할머니 몫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처음 그 말을 들을 때는 독거 노인에 대한 도움의 일환으로 선물을 하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비싼 값을 더 주고 정식으로 사신다는 것이다.
자기는 단순히 그 할머니의 심부름을 할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차로 그 권사님을 데리고 할머니 댁을 들려 심부름을 마치는 역활을 했다.
가는 길에 실어 달라는 두어 군데 다른 집에 까지 택배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 오면서
우리는 새삼 그 할머니의 주문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독거 노인은 생활고에 찌들어 식생활도 형편없을 것으로 아는 것이 상식이다.
명절에 찾아 오는 자손도 없는 할머니가 혼자 잡숫겠다고 가장 비싼 특수 부위 고기를 사셨다니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다른 용도로 쓰시려고 그랬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쨋든 우리에게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선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작은 텃밭은 식생활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이었다.
거기에 매달 기초 수급 대상자로 발생하는 소득이 그리 궁색하지 않게 만들었다.
아마 도시 같았으면 각종 관리비와 경직성 경비로 거의 소진되고 실제 쓸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은 다르다.
동네 이웃들이 조금씩만 도와도 어지간한 것들은 해결이 된다.
그 결과 할머니는 교회 헌금도 하면서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기왕이면
좋은 특수 부위의 소고기도 살 형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마치 그 할머니에게 빚을 지고 있었던 것 같은 마음이 해방을 맞은 느낌이 들었다.
명절은 그 할머니에게도 특수한 의미로 받아 들이셨던 것에 불과했지만 맛있게 잡숫고
100세 까지도 건강하게 사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어제 가까운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세상은 고령화가 실감이 난다면서 그 친구 어머님이 금년에 100세가 되셨지만
아직도 건강하시단다.
그런데 생신에 잔치는 못하게 하신다면서 웃는다.
하기야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도 98세 되시는 노권사님이 아직도 꼬박꼬박 주일 예배에
참석하시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