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꼬옥 눌러 심자.
2) 꼬옥 눌러 심자.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빨래를 하는데 시어머니가 빤 것은 하얗고
며느리가 빤 것은 그렇지가 못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그 비법을 물었지만 시어머니는 별거 없다고만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어머니의 임종이 닥치자 마지막으로 며느리는 궁금했던 비법을 다시 물었더니
시어머니 왈 " 꼬옥 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실 비법이란 알고 보면 별거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것이 결정적인 비법의 열쇠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본다.
고추의 특성은 뿌리의 70%가 표토에 분포하는 천근성이라는 점이다.
뿌리가 얕은 것은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창시절 배운 용비어천가 중에 "불휘기픈남간바라메 아니뮐쌔 곶됴코여름하나니"라는 귀절이 있다.
뿌리가 깊이 내리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도 아름답고 열매도 많이 맺는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리라!
고추 뿐 아니라 작물은 도복이 되면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한다.
더구나 고추는 뿌리가 얕아 쉽게 넘어지니 문제는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 동창생 중에 2주 마다 내 농장에 들러 농삿일을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
주말 농사는 아니지만 농삿일에 재미를 붙였다.
원래 모범생이기도 하지만 고추 모종을 심을 때면 그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작업 속도는 느리지만 여유있는 모습이 마치 도를 닦는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친구가 심은 모종은 끄떡없는데 내가 심은 줄에서 삐딱하게 쓰러진 녀석들이 많았다.
그 상태로 두면 작물이 구부러져서 장애를 입은 작물이 온전하게 자랄리가 만무한 것이다.
나무를 심을 때는 뿌리가 흙에 밀착하도록 뿌리 주변을 발로 꼭꼭 눌러준다.
고추 역시 뿌리가 흙과 일체가 되어야 활착이 빠르다.
뿌리 활착이 느린 묘는 생육도 지연되게 마련인 것이다.
더구나 뿌리가 얕은 작물은 도복의 가능성이 높아 더 견고하게 뿌리 주변을 눌러 주어야 한다.
뿌리가 약할 때 화방이 계속 늘어나고 비라도 맞게 되면 가분수가 되어 한쪽으로 쓰러지기 십상이다.
지주를 세우고 줄을 매주는 일이 모두 고추가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작업이다.
그 만큼 고추는 도복 방지가 재배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추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작물을 심을 때 유념해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