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잃는 것과 얻는 것
(2) 잃는 것과 얻는 것
대문 입구에서 본채까지 거리가 제법 길다 보니 울 안에 가로수들이 나란히 늘어서 운치를 돋군다.
가을에는 노란 은행잎이 아름답게 단풍이 들고 떨어진 은행잎은 마늘밭에 덮는 멀칭자재로 쓴다.
그러나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그 긴 길을 쓸어내야 하는 고역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눈 덮인 산야와 울 안 길이 멋져 보여도 눈을 쓸지 않으면 바깥 출입이 어려운 것이 불편한 현실이다.
만약 눈 쓰는 작업 만을 고려한다면 집을 대문 가까이에 지었어야 했을 것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또 잃는 것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깨닫게 한다.
경제 용어로 기회비용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시간을 투입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데 측정되는 개념이다.
전원생활도 마찬가지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모두를 얻기만 할 수는 없다.
도시에서 그간 누렸던 편익이나 인연은 당연히 잃게 된다.
동창생들은 모임에 나오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다.
경조사도 가려서 참석할 수 밖에 없다.
대개는 부의금을 우체국에서 경조환으로 보내기 일쑤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우정도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된다.
과거 현직에 있을 때의 친구들이 영원한 벗은 아니다.
전원생활을 하고 난 후 자주 농장에 들르는 동창생이 있다.
취미가 같아서 더 친밀해진 친구다.
잃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새로 얻는 친구도 있는 셈이다.
취미 역시 바뀌는 것이 정상이다.
소득도 변변치 않은 노년에 비용이 많이 드는 골프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나는 전원생활을 시작하자 마자 골프채를 아들에게 넘겼다.
대신에 이엉 엮는 법을 배워 볏짚 공예를 취미로 삼았다.
과거에 있던 병들은 사라졌지만 새로 얻는 병들이 있다.
손가락 관절이 아프고 잡초 제거 중에 발생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추가되었다.
알레르기는 전에도 있었는데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비염 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내린 결론이 바로 잡초 알레르기라는 것이다.
전원생활에서 얻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노년에도 할 일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이미 원예 치료 효과는 검증되었다.
농사 일을 통해 자존감을 갖게 되면 치매도 예방된다고 하니 노년에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작으나 크나 밭이 있으면 일이 따른다.
좋은 흙을 만들려면 일이 끝도 없다.
거기에 가축이라도 기를 경우 아침 저녁으로 녀석들이 주인을 부른다.
노년의 부부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일이다.
도시 생활에서는 아무리 그 굴레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별 수가 없다.
노년에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설사 이혼까지 가지 않아도 갈등을 겪고 사는 노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방의 필요성은 사라지고 귀찮기만 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 상처만 주고 받는다.
전원 농사의 가장 큰 소득은 바로 이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점일 것이다.
노년에 부부가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은 자식들에게도 더 없는 안심을 준다.
전원 생활의 환경과 농가에서 생산하는 건강한 먹거리는 손주들을 건강하게 키운다.
가족들에게 주는 전원 농가의 행복은 도시 생활에서는 줄 수 없는 최상의 선물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전원 농가에서 부부는 서로 필요한 협동자이다.
싸우다가도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니 절제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생활자 중에는 다시 도시로 회귀하는 비율이 적지 않다.
전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이다.
전원생활의 실패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는 의미이다.
아니면 전원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전원생활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면 전원생활은 바로 귀양살이하는 유배지나 다름없다.
나는 가장 큰 원인이 전원생활 중에 농사에 대한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데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농사를 고된 노동으로만 여기면 전원생활을 포기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농사에 재미를 붙이면 하루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간다.
이 책이 소개하려는 것도 바로 즐거운 농사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모르면 싫증이 나던 것도 알고 보면 재미를 느끼는 때문이다.
잔디밭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원주택은 오래 가지 않아 권태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밭농사는 여러가지 작물이 돌아가면서 재배되기 때문에 매년 분위기를 새롭게 바꿔준다.
단순히 몇 가지 채소로 만족하는 텃밭 농사 역시 시간이 흐르면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소한 300 평 이상의 농지를 바탕으로 전원 생활을 하기를 권하는 것이다.
웰빙은 다양한 먹거리 재배를 통해서 얻어져야 실현된다.
그러므로 웰빙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땀을 흘려야 하는 농사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잔디밭을 산보하며 맑은 공기만 마신다고 웰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재미있어서 흘리는 땀은 어떤 운동 못지않은 건강을 보장할 뿐 아니라 지루할 틈이 없다.
지루하지 않은데 전원을 떠날 마음이 생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