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전원 일기

고라니의 항의 시위

예농 2011. 10. 3. 08:24

 

 

3년 전 개한테 쫒기던 고라니 새끼의 기념 사진이다.

이 녀석은 나한테 달려 와 목숨을 구했지만 끝내 개에게 희생되어 뒷산에 묻혔다.

 

어쩌면 이 녀석의 혈족일 녀석들이 우리 집 주변에서 살아간다.

작년에는 우리밭 옆의 원추리 틈에도 갓 태어난 새끼 고라니가 숨어 있었다.

풀을 베다가 새끼를 발견하고 잡초 제거 작업을 미뤘다.

다음 날에 보니 불과 몇 미터 근처에 새끼를 옮겨 놓았다.

 

도대체 녀석들은 우리 집 부근을 왜 떠나지 못하는가?

결국 우리 밭의 농작물이 녀석들의 생존 터전인 모양이다.

 

서리태가 앙상한 몽당 연필이 될 때까지 녀석들은 사정없이 먹어댄다.

하는 수 없이 울타리 망을 치고 접근을 막았다.

 

그랬더니 윗밭의 땅콩 잎이 다음 순서였다.

작년만 해도 땅콩 잎은 건드리지 않았었다.

이제는 먹을 것이 없으니 땅콩 잎이라도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땅콩 잎도 시간이 가면 줄어들고 억세진다.

그래서 신 밑의 밭에 심은 시래기무 잎을 먹기 시작한 듯 싶다.

 

그러나 우리가 또 시래기무 밭에 울타리망을 치자 녀석들은 난감해진 것이다.

그제 밤과 새벽 사이에 안식구는

고라니가 집 둘레를 돌며 칭얼대며 울고 다닌다는 것이다.

 

잠에 빠져 나는 듣지 못했는데 어젯 밤에는 나도 녀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처량하게 울며 집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녀석은 지금 왜 먹거리를 못먹게 하느냐고 항의하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이 산에서 약초를 캐면 자연히 고라니의 먹거리가 사라진다.

그래서 농가에 내려오는데 농가에서 마져 막으니 대책이 없다.

 

녀석의 항의 시위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잠을 설치고 나서 생각하니 참으로 나로서도 난감하다.

녀석들을 모른 체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농작물을 마음대로 개방할 수도 없다.

에~이, 못들은 체하면 저도 물러가겠지, 뭘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