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홀대하는 농민들
밭에서 걷어 낸 비닐 조각들이 바람에 날려 멀리 나뭇가지에 걸리기도 하고
쌓아 놓은 비닐들이 배수로나 논으로도 날아든다.
앞 밭에 있는 비닐 조각들은 남풍을 타고 우리 밭으로 날아 온다.
결국 그 것들은 우리가 수거해야 한다.
오늘은 우리 밭 경사지에 심은 바이텍스 나무에
또 누가 버린 흰 비닐 주머니가 걸려 있어 주으러 갔다.
그런데 근처 흙더미 속에서 또 다른 비닐이 파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잡아 당기니 여간 큰 뭉치가 아니다.
둘둘 말아 일부러 파묻은 흔적이 역역하다.
결국 삽으로 땅을 파면서 잡아 당겼더니 한푸대 분량은 될 듯싶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파묻었을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농사짓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예전에 우리 땅에 살았던 사람이거나 이웃 사람이겠지!
사진에서 보이는 밭과 우리 땅 사이에는 배수로가 있다.
재작년 이 밭에서 농사짓던 동네 할멈이 배수로에 처넣은
반짝이 은박지 뭉치가 지금도 반쯤 땅에 파묻혀 보인다.
나는 일부러 보란 듯이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땅 임차인이 바뀌었다.
작년부터 다른 사람들이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데 마찬가지다.
비닐을 밭에서 걷어 태우다 말고 내팽겨쳐 놓은 상태로
콩이나 깨를 심겠다고 마냥 방치하고 있다.
그 사이에 비닐이 바람에 날려 자연 청소가 되도록 하는가 보다.
동네에는 폐비닐을 모아 버릴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있다.
그런데도 귀찮아서 옮기지를 않는 것이다.
혹시 남의 땅을 갈아 먹는 처지라서 무책임한가 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자기 땅인데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화를 내기도 지쳤다.
그냥 바람에 날리는 비닐을 내가 주워 버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복을 받지 못한다.
자연도 결국 우리 인간이 하기 나름 아닐까?
농약이나 제초제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폐비닐까지 땅에 파묻거나 방치하는 것은
농부의 기본적 책무를 망각한 짓이다.
더구나 땅의 소산으로 삶을 영위하는 농부가 땅을 그렇게 대해서 될까?
자연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