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전원 일기

전원 생활에 공짜는 없다.

예농 2010. 1. 3. 22:40

 

 

 

 

눈이 내리면 설경이 아름답다.

그러나 눈이 쌓여 가면 걱정도 비례하여 커진다.

더구나 집에서 대문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은데 아랫 집과도 제법 떨어져 있어

내가 치워야 할 눈의 몫이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대문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다 보니 길 양편에 가로수들을 심었다.

앵두를 나란히 양쪽으로 심고 그 사이에는 키가 큰 은행나무들을 심어

위 아래 모두 조화와 풍성한 느낌을 갖도록 한 것이다.

가로수 만이 아니다.

길 양쪽의 가장자리에는 코스모스도 매년 자리를 잡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세가지 꽃과 나무에서 옷을 바꿔 입으며 자태가 변한다.

겨울에는 눈꽃이 나무에 피는 모습도 장관이다. 

이 모두 전원에서 얻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공짜가 없다.

눈이 쌓이면 치워야 할 부담이 길이 긴 만큼 크다.

 

그제 내린 눈이 수북히 쌓이기 시작하자

어제부터 눈을 치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안식구까지 나섰지만 결국 끝내지 못하고 오늘을 맞았다.

교회를 못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새해 첫 주일을 땡땡이 치고 말았다.

 

오늘은 점심을 일찍 먹고 다시 눈 치는 작업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작은 아들이 전화로 걱정을 하며 아이디어를 주었다.

가까운 군부대 장병들을 동원하여 눈을 치우라는 것이다.

자기가 군대 시절 대민 봉사를 나가면 모두 좋아했다는 것이다.

답답한 영내에 있기 보다 콧바람을 쏘이니 재미있어 한단다.

아버지의 고리타분한 생각과 달리 군인들 자신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을 누구에게 맡기나?

 

다행히 오후 늦게 나머지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땀이 흥건히 밴 몸으로 들어와 마시는 효소로 만든 자가 쥬스의 맛은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청량 음료가 아니다.

팬티 바람에 시원한 음료로 갈증을 풀고 샤워를 하니

피곤한 몸이 잠을 청한다.

 

보기 좋다고 편하게만 즐기게 하지 않는 것이 아마 자연의 섭리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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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또 눈이 내리고 있다.

어제 쓸었던 길은 흔적도 없이 눈에 파묻혀 있다.

어제는 그래도 고라니 발자국이라도 보였는데 오늘은 내 발자국 뿐이다.

그나마 조금 있으면 흔적도 찾지 못할 듯싶다.

 

전원생활 4년 차에 이렇게 많은 눈에 갇혀 보기는 처음이다.

먹거리나 땔감도 충분치 못했던 옛날 같았으면 참 막막했을 것이다.

 

폭설 경보가 빨리 해제되기만 기다릴 밖에 없다.

인간은 역시 자연 앞에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